최근 도는 우크라이나 관련 밈 중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군에서 만약 우크라이나군에 전차 교관을 파견한다면 정작 교육받는 우크라이나군 전차병들보다 실전경험이 크게 떨어질거라는 이야기죠.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군이 적 전차를 상대를 포를 쏴 본 것은 2003년 이라크전이 마지막이고, 그나마 당시에도 이라크군 기갑부대의 세력은 많이 위축돼서 전차전 규모도 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실전 참가했던 미군 기갑부대 관계자들 중 지금까지 현역인 사람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고 말이죠(벌써 20년…).

한마디로 가까운 장래에 우크라이나에 교관으로 파견될 미군 교관들은 전차전 경험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실전경험 풍부한 우크라이나 ‘훈련생’들을 가르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게 말이 안될 것 같고요.

하지만 이 밈들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전차병들도 “전차전” 경험은 많지 않을 것

우크라이나군이 다수의 러시아군 전차를 파괴한건 사실입니다만, 정작 그 중 전차전으로 파괴된건 얼마나 될까요.

이번 전쟁 뿐 아니라 수많은 전쟁사례에서 전차가 파괴되는 원인 중 전차대 전차의 전투는 의외로 적습니다. 포격, 지뢰, 사고, 고장후 포기, 보병의 대전차 공격 등 다른 이유로 파괴되는 것들이 더 많죠.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대전차 미사일과 RPG, 포격등 다양한 수단들로 많은 전차들이 파괴됐습니다.

전차 그 자체도 전차전에만 쓰이는게 아닙니다. 아마 많은 양측 전차들이 전차대 전차의 전투는 아직까지 못 치뤘을겁니다. 그토록 많은 전차들이 격돌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차가 상대하는 표적은 전차보다는 대전차포나 보병의 방어진지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즉 우크라이나 전차병들 중 실제 전차전, 즉 “전차대 전차의 전투”를 치뤄본 경험이 있는 인원의 비중은 생각보다는 낮을겁니다. 

 

- 실전경험이 무조건 최고일까

실전경험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건 아닙니다.

가장 좋은 예가 이라크군입니다. 1991년의 이라크군은 이론상으로는 거의 10년 가까운 이란과의 실전으로 단련된 정예군이었습니다. 반면 당시 미군의 대부분은 베트남전 이후 입대한 인원이었고 실전경험이 이라크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전에 미군이 이라크군을 이기는거야 당연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미군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거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지상전 결과는 미군의 일방적 승리. 물론 화력과 제공권, 기술의 우위 등 수많은 요인들이 있었지만, 전투에 임하는 미군들의 기량 자체도 이라크군보다 우월했을 뿐 아니라 실전에서 그것이 잘 발휘되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실전경험도 중요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전경험은 그 자체만으로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요건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경험에만 매몰돼서 시야가 좁아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고, 1991년의 이라크군이 그랬습니다. 이란군과 오랜 실전경험을 치루기는 했지만, 그 실전경험은 미군과 싸우는데 도움이 될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 미군 자신도 실전경험 과몰입을 경계

실은 미군 자신도 지난 수년간 실전경험에 대한 과대평가를 피하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실전경험자가 폭증하면서, 실전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수뇌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죠.

그저 '영이 서지 않는' 문제로 그치는게 아닙니다. 실전경험자들이 자신들의 실전경험에 몰입되어 기존의 교리와 전술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교리와 전술 중 실전경험을 토대로 바꿔야 할 부분은 바꾸는게 맞고, 미군은 그러고 있습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얻은 실전경험 중 꽤 많은 부분은 앞으로 미국이 처할 전쟁에서는 무용지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규군 상대가 아닌 게릴라 조직과의 전투로 얻어진 실전경험만 토대로 중국 및 러시아와 싸울 수는 없는거니까요.

그 때문에 미군은 지난 10년 사이에 테러와의 전쟁에서 얻은 실전경험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 성과가 어떨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실전경험은 말 그대로 '경험'이기 때문에 때로는 지나치게 편향될 수 있는 만큼 경계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 교육과 훈련을 무시하지 마라

실전경험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군의 훈련과 교육도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반대로 위에서 보듯 실전경험에만 매몰되어 다른 이들로부터의 훈련과 교육을 무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걸프전의 예에서 보듯, 제대로 훈련된 군대라면 설령 실전경험이 부족해도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압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가 외부의 교육과 훈련 지원 -때로는 그걸 해 주는 교관들이의 실전경험이 훈련받는 쪽 군대보다 적어도- 을 받아 그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사례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우크라이나군 전차병들이 미군 전차병들보다 실전경험이 많다고 미군이 그들을 가르쳐주는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우크라이나군 전차병들보다 미군 전차병들이 더 다양한 시각으로, 더 선진적인 전술교리와 시설을 이용해 더 다양한 훈련을 받았을테고, 그 경험은 우크라이나군이 실전경험으로 얻은 것과는 또 다른 뭔가를 제공할겁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 스승이 될 수 있거니와,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 최강의 군대에서 가르쳐주는 거라면 일단 주의깊게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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