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처칠을 운구중인 장례용 영구포. 이 포가 57년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운구하는데도 쓰였다. (위키피디아)
1965년, 처칠을 운구중인 장례용 영구포. 이 포가 57년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운구하는데도 쓰였다. (위키피디아)

최근 서거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9월 19일(우리 시각) 발인식을 갖고 윈저성 내부의 묘역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먼저 윈저성까지 여왕의 시신을 운구한 것이 ‘사람이 끄는 마차’라는 점이고, 또 엄밀하게 따지면 그것이 마차도 아니고 대포라는 것이다. 대포 포신 위에 관을 안치할 수 있는 자리를 특별히 만든 ‘운구용 대포’이다. 영구차가 아니라 ‘영구포’라고 해야 할까. 영어로는 Royal Navy State Funeral Gun Carriage, 즉 국장용 왕립해군포라고 해야겠다.

대포를 이용해 귀족이나 주요 인물을 운구하는 전통은 의외로 유럽에서 꽤 오래전부터 있었고, 영국도 왕족의 운구에 대포를 이용하는 경우는 꽤 오랜 전통이다. 하지만 사람이 끄는 경우는 영국의 특이한 전통중 하나다. 

이 전통은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 때 세워졌으며 해군이 맡는다. 원래는 말이 이 ‘영구포’를 견인했지만, 도중에 말이 날뛰면서 자칫 여왕의 관이 떨어질 뻔 했다. 그래서 말을 떼고 운구를 호위하던 해군 수병들이 대신 끌면서 시작된 전통이라고 하는데, 이번 장례에는 142명의 수병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포 자체도 현재 자료에는 1896년에 제조된 12파운드 야포라고 되어있다. 얼핏 보이는 외관은 13파운드 야포같기도 하지만, 하여간 영문 위키피디아등의 자료에는 12파운드라고 하니 그 내용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이 포(정식으로는 146번포) 1896에 생산된 뒤 1899년에 국장용으로 개조되었다고 하는데, 1901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운구된 포이기도 하다. 원래 육군 소속이었지만 해군은 빅토리아 여왕을 이 포로 운구한 뒤 육군에 인도하기를 거부했고, 조지 5세가 1910년에 이 포를 정식으로 해군에 양도하게 했다. 그 뒤로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등 모든 영국 왕의 장례에 쓰였으며 왕은 아니지만 윈스턴 처칠과 마운트배튼 경의 장례에도 이 포가 쓰였다. 사실 여왕의 장례 이전에 마지막으로 이 포가 운구에 동원된 것은 1979년 마운트배튼 경의 장례였다.

장례에 쓰이지 않을 때 이 포는 영국 해군의 특별시설에 보관된다. 해당 시설은 기온과 습도가 적절상태로 유지되며, 1주일에 한번씩 살짝 움직여서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물다가 변형되지 않게 관리된다. 그리고 24시간 이내에 장례에 동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어떻게 보면 정말 영국스러운 이야기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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