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병무행정은 어떤 공무보다 공정함과 신중함이 필요한 정부의 업무입니다.
국방부의 외청이기에 병무청 관계자들의 공무 여건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최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플래툰이 단독 입수했습니다.
2023년 연초에 병무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다운로드 파일이 수상하다는 복수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해당 파일은 ‘현역병 지원안내’를 알리는 내용이었는데, 이 안내서의 하단에 표기된 병무청 로고 옆에는 일본 육상자위대의 최신 전차인 ‘10식 전차’로 보여지는 삽화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습니다.
일본 유학시절과 취재활동으로 10식을 자주 접해본 기자가 볼 때 측면의 사이드스커트와 삼각형의 돌출포탑, 좌우반전인 것 같지만 사격통제장치와 기관총 등의 위치가 ‘10식 전차’와 동일했습니다.
삽화를 접한 기갑병과 예비역 장교는 “지난 정부는 소련/중국전차, 이번 정부는 일본 전차냐”면서 “국군이 운용하는 전차가 아닌 일본 육상자위대의 10식 전차가 명확하다”고 말했습니다.
병무청은 왜 육군이 운용하고 해외에도 수출된 국산 ‘흑표전차(K-2)’를 삽화에 쓰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 4일 병무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병무청에서는 삽화의 문제 자체를 처음에 인지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해당 부서에서 사전검토를 했다면서도 문제에 대해 전문가 등의 추가 자문을 받고 조치하겠다 밝혔습니다.
문제가 된 안내서는 신속히 병무청 웹에서 삭제됐지만, 해당 안내서의 URL주소로는 5일 오전까지 검출이 됐습니다.
삭제가 됐던 안내서가 웹주소 상으로 검출이 되는 일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더 이해하기 힘든일은 이날 오후에 벌어졌습니다.
복수의 제보자들이 네이버의 군사동호인 카페에 개재된 글이 병무청의 요청에 의해 삭제됐다고 알려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전날 네이버 카페 ‘밀리터리 군사무기’에는 ‘[국내소식]이야 병무청 대단하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여기에도 병무청이 올린 안내서에 그려진 ‘10식 전차’에 대한 지적이 올라 왔습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이 올라왔던 URL주소로 접속하면, 병무청의 요청에 의해 게시물이 삭제됐다는 네이버 측의 설명이 나옵니다. 네이버가 이를 받아들인 법적근거는 ‘병역법 제80조 위반’입니다.
병역법 제80조가 얼마나 강력한 법 조항이기에 군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건전한 비판과 소통을 한 게시물을 삭제시킬 수 있었을까요?
<병역법 제80조 제1항(병무행정에 대한 협조): 병무행정관서의 장은 직무를 수행할 때 필요하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정보처리·통신시설을 보유하는 기관의 장에게 병무행정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제2항: 제1항의 요청을 받은 기관의 장은 이에 협조해야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해당 조문 어디에도 헌법상의 권리인 표현의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직무 수행에 필요하면’ 이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 표현 하나로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 시민의 권리를 억압할 수 있을까요.
최근들어 정부기관의 소통부재와 지적식재산권 침해가 계속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병무청은 잘못을 인정하고 시민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다가서길 부탁드립니다.
글: 문 형철(플래툰 외부 기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