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쟁에서 사용된 각종 장갑차량 중 다소 이색적인 차량이 있다. 영국제의 색슨(Saxon) 병력수송 장갑차(APC)이다.

색슨은 1983년부터 영국군이 사용한 차륜식 장갑차다. 당시 예산부족에 시달리던 영국군이 장갑차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발주한 차량으로, 베드포드 M시리즈 4륜구동 트럭 차대에 장갑 차체를 얹은 일종의 염가판 장갑차다. 무게도 10.6t으로 경량이고, 차륜식이기 때문에 유지비용도 낮은데다 최고속도 역시 100km/h에 가깝지만 방어력은 7.62mm NATO탄 방어가 한계가 무장도 기관총 1정을 사람이 나와서 잡고 쏘는게 한계다.

그래도 최대 10명의 병력을 태우고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저렴한 장갑차라는 이유로 나름 잘 써먹었고, 북아일랜드나 홍콩에서는 대테러 혹은 치안유지용 장갑차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2005~2006년 사이에 영국군은 전량을 퇴역시켰다. 방어력이 '테러와의 전쟁'에 쓰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군은 이 차량을 퇴역시킨 뒤 각종 MRAP차량들을 대거 도입했고, 갑자기 잉여물자가 된 440여대의 색슨은 여러 나라에 중고 차량으로 방출됐다.

영국군의 색슨. 2003년. 위키피디아.
영국군의 색슨. 2003년. 위키피디아.

그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2015년에 75대의 중고 색슨을 대당 우리 돈 약 7천만원 정도 가격에 도입했다.

이 장갑차의 퇴역 결정을 주도했던 영국군 퇴역 장성인 리처드 대넛 장군(2005~2006년 당시 영국 지상군 총사령관)은 우크라이나의 도입 결정에 "이 차량들은 고강도 분쟁에서는 무용지물"이라며 이 차량을 판매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까지 비난했으나, 정작 우크라이나군에서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에서 색슨은 그야말로 '장갑 트럭'정도로 운용되었고, 지휘차량이나 야전구급차 등 최전선에서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임무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그런 정도라면 어쨌든 경기관총탄과 파편 정도를 막는 약한 수준의 장갑도 딱히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테스트로는 20m에서 발사된 7.62x54mm R탄의 철갑탄을 방어했다는데, 이 정도면 원래 상정된 방어수준에서는 충분한 레벨이다. 또 험지 기동력에 있어서도 우크라이나군은 BTR계열 차량들과 비교해 딱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꽤 후한 평가도 내리고 있으며, 영국제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적 신뢰성 역시 높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사진. 차체 위에 기관총을 추가로 거치했으나 대부분의 우크라이나군 색슨은 비무장 상태로 운용되는 듯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사진. 차체 위에 기관총을 추가로 거치했으나 대부분의 우크라이나군 색슨은 비무장 상태로 운용되는 듯 하다.

올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색슨은 그닥 큰 주목은 받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전투 임무보다는 '그 외 잡일'을 하는 차량으로서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전쟁 초기 단계에서 러시아군에 노획되거나 파괴된 차량이 보이고, 유명한 Oryx사이트에서는 4대가 노획된 것을 확인했다.

영국군이 색슨을 추가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할지의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은 아직 자국내에 130여대의 색슨을 치장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일부는 영국군, 일부는 민간업체 보유).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한다면 이 차량들도 추가로 제공되지 않을까 싶지만, 현재까지 이것들이 우크라이나로 이전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듯 하다.

파손된 상태로 러시아군에 노획된 색슨.
파손된 상태로 러시아군에 노획된 색슨.

참고로 영국군은 전쟁이 발발하자 색슨이 아니라 색슨을 대체한 차량중 하나인 마스티프 MRAP을 우크라이나에 기증했다.

마스티프는 색슨에 비하면 여러 면에서 우수한(특히 아래에서 폭발하는 지뢰나 IED등에 대한 방어력에서) 장갑차이기는 하지만, 이런 치열한 전면전 상황에서는 결국 '장갑 트럭'의 수준에서 운용되어야 할 차량이기는 하다. RPG에만 맞아도 파괴되는 수준이기는 색슨이나 매한가지이니 말이다.

하지만 장갑 트럭, 즉 방탄 능력이 있는 다용도 차량이 어떻게 보면 전차나 장갑차 못잖게 요긴하게 쓰이는게 현대의 전쟁터인 만큼, 마스티프도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상당히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마스티프가 몇대나 공급되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마스티프 MRAP (UK MOD)
마스티프 MRAP (UK M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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