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우크라이나군이 쓰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BB탄(베이스 블리드 탄)을 보여드렸는데, 이 쯤에서 의문을 가질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왕 사거리 늘리려면 ‘항력감소용 연소제’ 같은 쪼잔한(?)거 넣지 말고 아예 로켓을 넣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탄이 있다. RAP(Rocket Assisted Projectile), 즉 로켓 보조추진탄이라는게 있다. 한마디로 포탄 뒤에 로켓을 달아 진짜 추진력을 제공한 것이다. 이 로켓만으로 발사될 수는 없지만, 포탄이 날아가다 로켓을 한번 점화하면 추진력이 더 붙어서 원래보다 사거리가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사실 사거리만 보면 RAP탄이 훨씬 유리하다. BB탄은 40km대의 사거리를 K9급의 자주포(즉 52구경장 포신)로 얻을 수 있지만, RAP탄은 같은 포에서 현재 기술로 약 50km대의 사거리까지 발휘할 수 있다. 아니 이럴거면 왜 RAP탄 안 쓰고 BB탄 같은걸 따로 쓰지?
이유는 여러가지 있다. 일단 가격면에서 유리하다. BB탄은 구형 고폭탄 대비 50~100%정도 더 비싸다고 한다. 반면 RAP탄은 BB탄보다 더 비싸다. 실제로 우리가 최근 개발에 성공한 K315 사거리 연장탄(BB/RAP 복합적용으로 사거리 54km)도 생산 예정량이 약 11만발로 우리 군의 자주포 숫자를 감안하면 적은 편이다.
여기에 BB탄은 더 잘 맞는다. BB탄은 기본적으로 추진력이 없는 물건이라 뒤에서 연소하는 항력감소제가 딱히 탄도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 RAP탄은 추진력이 추가되는 만큼 연소 패턴이나 점화 타이밍등에 따라 탄도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 즉 더 멀리 나가지만 덜 맞을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RAP탄의 또 다른 단점은 위력이다. 로켓 추진제가 차지하는 부피가 있다 보니 내부에 들어가는 작약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 예를 들어 미군의 대표적 RAP탄은 155mm M549A1인데, 이 탄에는 TNT작약 6.8kg이 들어간다. 반면 BB탄은 탄종에 따라 다르지만 8~10kg정도다. RAP의 경우 로켓 모터에만 2~3kg사이의 무게가 소모되니 그만큼 작약에서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처럼 BB탄쪽이 값은 더 싼데다 사거리도 BB탄이 아닌 기존 고폭탄에 비하면 그래도 20~35%는 더 확보되니, RAP은 정말 사거리가 길게 필요할 때만 쓰고 그 외에는 BB탄을 더 쓰는 쪽으로 가는 셈이다.
참고로 BB탄을 캐나다의 제럴드 불 박사의 발명이라고들 하고 필자도 그런줄 알았는데, 실은 이 원리를 처음 개발해 실용화한 것은 1960년대의 스웨덴이라고 한다. 다만 이걸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부품을 주문하느라 특허를 미국에도 공개해야 했고, 나중에 소유권이 제럴드 불 박사에게 매각되면서 그가 이를 현대적으로 개량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BB탄의 실용성에 그닥 주목을 안 했으나 제럴드 불이 BB 원리 적용뿐 아니라 포탄의 공기역학적 형상 전면 재디자인까지 해서 사거리를 크게 늘리는데 성공한 덕에 90년대부터 빠르게 주목을 받은 것이라고….
참고로 RAP탄도 최근 GPS/INS를 이용하는 궤도수정 신관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받고 있다. 궤도수정 신관을 이용하면 기존의 약점이던 상대적으로 낮은 정밀도의 문제가 단번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값은 비싸지지만 단 한 발에 겨우 공산오차 10m이내로 목표를 명중시킬 수 있는데다 사거리까지 늘어난다면 당연히 어느 나라 포병이든 솔깃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최신형인 XM1113 RAP탄에 M1156 PGK(정밀유도 키트) 신관을 적용해 사거리와 정밀도의 대폭 향상(M1299 자주포에서 무려 70km표적 명중)을 실현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K315탄에 수입 혹은 국산화 궤도수정 신관을 적용할 예정이다. 그 동안 포탄은 맞은 곳에 또 맞을 일 없다는게 상식이었지만, 이제 그 상식은 때려 쳐야 할 때가 온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