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중, 핀란드는 약소국이면서도 소련과 맞서 끝까지 사투를 벌였고 비록 졌다지만 소련의 위성국 신세는 면하는 일종의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추축 3대국 중 하나이자 나름 강대국(비록 강대국의 말단이지만)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일과 서방 연합국 사이에 끼어 지리멸렬한 종전을 맞았다.

자. 이런 핀란드가 이탈리아제 총을 썼다면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는 원래 6.5mm구경의 칼카노 1891계열 소총들을 사용했으나, 1930년대 후반에 보다 사거리와 위력이 늘어난 7.35mm 구경으로 교체된 칼카노 M1938이 채택되어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략 이 소총 20만정과 7.35mm 탄약이 생산될 무렵,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비록 1939년 9월의 개전 시점에서 이탈리아는 참전은 아직 하지 않았으나 전쟁에 곧 휘말릴 가능성은 아주 높았고, 대규모 전면전 상황에서 기존의 6.5mm를 7.35mm로 교체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국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8mm 마우저(독일), 6.5mm 칼카노, 7.35mm 칼카노. (위키피디아)
8mm 마우저(독일), 6.5mm 칼카노, 7.35mm 칼카노. (위키피디아)

 

이게 컴퓨터에서 작업한거면 Ctrl+Z 누르면 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는 법. M1938계열 7.35mm총기들을 6.5mm로 총열을 재교체하는 작업이 진행은 되었으나 역시 가장 빠른 방법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7.35mm 총기들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때마침 그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핀란드였다.

핀란드는 1939년 겨울에 소련의 침공을 받아 ‘겨울전쟁’이 벌어지자 무기를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 뭐든 사들이려 나섰다. 이탈리아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7.35mm M1938소총들을 핀란드에 떠 넘겼다. 그 숫자가 대략 10만정(9만 3천 5백정이라는 기록도 있다). 비록 1940년 여름에야 총들이 도착해 겨울전쟁에 쓸 일은 없었지만, 곧 핀란드가 소련과의 ‘계속전쟁’에 돌입하면서 어쨌든 이 총들은 전쟁에 동원되어야 했다.

핀란드는 이 총들의 대부분을 총 쏠 일이 없는 병력들, 즉 공군이나 포병등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소수는 일선 보병부대에도 지급됐고, 일부는 동부 국경지방에서 소련 빨치산의 기습에 시달리던 민간인들에게 방어용으로 지급했다.

M1938. 사진의 총은 6.5mm로 재개조된 M91/38이라고 한다. 외관은 별 차이가 없고, 고정식 가늠자는 그대로다 (위키피디아)
M1938. 사진의 총은 6.5mm로 재개조된 M91/38이라고 한다. 외관은 별 차이가 없고, 고정식 가늠자는 그대로다 (위키피디아)

 

그러나… 핀란드인과 이탈리아 총의 궁합은 정말 안 좋았다.

핀란드는 모신나강을 자국내에서 생산하면서 정밀도를 높이고 가늠자-가늠쇠도 최대한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게 개량했다. 그 결과 핀란드제 모신나강 소총들은 2차 대전의 군용 소총들 중 가장 잘 맞는 총들중 하나에 속한다- 독일의 Kar98k보다도 말이다.

반면 칼카노 M1938은 그 정 반대였다. 품질도 정밀도도 썩 좋지 않았지만, 최악은 가늠자였다. 영점 조절도 거리에 맞춘 조절도 안되는 완전 고정식 가늠자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탈리아제 탄약의 품질도 썩 좋지 않았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공장에서 대충의 영점은 잡고 출고됐어야 하지만 탄약의 품질이 들쑥날쑥이니 조준한대로 맞아준다는 보장이 한없이 낮았던 것이다.

 

이 잘못된 만남의 결과는? 이혼… 아니 폐기였다. 총 하나라도 아쉽던 핀란드군 자체적으로야 총을 버릴 턱이 없었지만, 많은 핀란드 병사들은 기회만 닿으면 이탈리아제 총을 버리고 자국산이든 노획품이든 모신나강으로 바꿨다. 전쟁이 끝날 때 쯤에는 대략 이 총들 중 20%가 병사들에 의해 버려지거나 파괴되었다고… 아마 버려지지 않은 총의 주인들은 전쟁중 소총을 쓸 일이 없었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난 뒤 핀란드군은 이 총들을 모아서 보관하다 1957년에 미국의 유명한 무기 거래업체 인터암스에 전부 팔았다. 팔 때 받은건 돈이 아니라 스텐 기관단총들이었다고… 이 총들은 미국에 수입되어 지금도 적잖은 양이 미국 콜렉터들 수중에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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