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6 소총이 미군의 제식소총으로 도입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혁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M16은 기존의 M14에 비해 휴대성도 높고 훨씬 가벼웠으며, 더 빠른 연사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습도에 취약한 목제 스톡 대신 폴리머 재질의 방열덮개와 개머리판도 M14에 비해 훨씬 앞서가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미군이 M16의 성능을 지나치게 신뢰했다는 거다. 초기의 M16에 사용된 5.56mm 탄환은 화약의 질이 좋지 못해 기존의 탄환들보다 탄매가 더 많이 발생햇고, 이는 곧 기능 고장으로 연결되기 일쑤였다. 아말라이트로부터 AR15의 판권을 인수한 COLT는 M16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미래적인 소총이라 총기 청소가 필요없다'는 과장된 선전을 해댔고 미 공군과 육군이 이에 보기 좋게 낚였다.  

총기 청소(우리 군에서는 총기 수입이라고도 하지요)가 필요 없는 초 미래적인 소총이다보니 당연히 매뉴얼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들 중 초기에 M16을 지급받은 이들에겐 총기를 분해하거나 정비, 청소하기 위한 매뉴얼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게 일어날 리 없는 초 미래적인 총인데 매뉴얼이 왜 필요해? ㅋㅋ  

1967년에 이르러 미군은 M16A1을 도입한다. M16A1은 미국의 베트남 개입 초기에 운용된 M16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한 모델이라는 걸 모르시는 독자 분들은 아마도 없으실테니 그 이야기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미군이 M16을 개량하면서 실시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누구나 알기 쉽게 이 신형 소총을 이해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서 지급하는 것'이었다. 

바로 Will Eisner가 그린 만화책, 'The M16 Rifle, the operation and preventive maintenance'가 그것이다.  

미 육군에서 제작하고 실제로 US Army phamplet 750-30이라는 정식 문서 명칭까지 부여된 이 만화책은 총 3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M16 소총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 및 각 파츠의 설명, 작동할 시의 유의사항, 청소 방법, 정비 방법, 소총의 장단점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8년에 최초로 만들어져 베트남전 기간 내내 미 육군 병사들에게 지급된 이 만화책은 당시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이 신형 소총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만화를 좋아하시거나 혹은 아메리칸 코믹 장르, 또는 그래픽 노벨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Will Eisner를 모르시는 분들은 아마 없으실거다. Will Eisner는 만화라는 장르를 순수 문학작품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만화가 중에서는 최초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던 인물이다.  

Will Eisner는 요즘 만화나 웹툰, 그래픽 노벨 등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들'이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넓은 컷, 혹은 한 페이지 전체를 할애하는 스플래시 화면, 혹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작중 벌어지는 이벤트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등의 기법들을 최초로 구현한 만화 작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아이즈너 상'은 전세계 모든 만화가들에게 있어 '앙굴램 만화상'과 더불어 만화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인식될 만큼 그 위상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미군이 Will Eisner를 자군의 매뉴얼 작가로 기용한 건 베트남전이 최초가 아니다. 2차대전 당시에는 윌리스 지프, M3 리와 M4 셔먼 전차들의 매뉴얼도 이 사람이 그린 만화책으로 배부가 되었고, 그 외에도 바주카, 박격포, 무전기 등 다양한 장비들의 매뉴얼도 그린 적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에겐 상당히 친숙하고 또 반가웠을 거다.  

장병들을 위한 매뉴얼이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고리타분하게 장비의 특성이나 기능, 정비 방법들을 설명하지 않고 당대 젊은이들에게 익숙하고 또 그들이 선호하는 글래머한 여성(Maggie)이 등장하는 것도 포인트.

심지어 총기 분해 방법을 설명하는 챕터의 제목은 무려 '네 여친을 제대로 벗기는 방법(How to strip your baby)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