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P320의 기반이 된 P250자체가 ‘잘못 끼운 단추’에 매우 가깝다. P250이 출시된 시점은 2007년. 다른 경쟁 메이커들은 아예 글록에 정면으로 대항할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 방식의 총을 막 내놓았거나 개발을 한창 진행하던 중이었다.
SIG사우어도 기존 개념의 해머식 권총으로는 프레임을 폴리머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글록에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해머 방식의 P250이었다.
SIG사우어는 기존 개념의 해머 방식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해머 격발기구를 개발했고(농담같죠? 저도 차라리 농담이면 좋겠어요), 그것으로 스트라이커 방식에게 이길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솔직히 개발중에 그걸 깨닫지 못한것이 더 신기하지만, 아무리 방아쇠의 스트로크를 짧게 하고 압력도 줄인다 한들 해머 방식의 더블액션 온리로는 스트라이커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P250을 개발하면서 쓴 돈과 시간을 SIG사우어의 경영진이 되게 아까워했던 것 같다. 물론 단순히 경제적 개념만 문제가 아니었고, 2011년부터는 미 육군의 차기 권총 사업까지 시작되는 등 뭔가를 원점부터 새로 개발할 시간이 굉장히 빠듯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들어선 SIG사우어의 경영진이 미군 납품을 굉장히 중요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시간 문제는 단순히 ‘본전이 아까운’ 수준을 넘는 현실적 문제였을 것이다.
이유가 뭐가 되었건 SIG사우어는 완전히 새로운 권총을 개발하는 대신 P250을 스트라이커 방식으로 서둘러 재설계했고, 그 결과 P250이 출시된지 7년만에 P320을 내놓은 뒤 불과 3년만에 미군 차기 제식권총으로까지 선정되는 결과를 얻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SIG사우어 경영진의 결정은 나름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P250을 베이스로 만들면서 생긴 한계도 분명하지 않았겠느냐는 것. 앞서도 언급했듯 다른 경쟁사들의 스트라이커 방식 권총들은 기존의 해머식 권총과는 결별하고 새로 개발을 시작했다. 특히 HK같으면 기존에 폴리머 프레임을 사용한 USP시리즈가 이미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만큼, 그걸 스트라이커 방식으로 전환하는 P320식 개발을 했으면 비용과 시간을 훨씬 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단 P250과 P320을 비교해보면, 사이즈와 형태는 아주 흡사하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폴리머제 그립 모듈(다른 총들이면 ‘프레임’이라고 부를 부분)은 아예 P320과 P250사이에 어느 정도의 호환성까지 있다. 총열도 슬라이드 길이와 구경이 같은 모델끼리는 어느 정도 호환이 된다. 탄창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슬라이드와 FCU(격발기구 모듈)은 두 총 사이의 호환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칫수나 외관 형태는 그대로다. 즉 P320을 개발하면서 내부 구조는 결국 P250에서 정해진 사이즈와 형태 안에 ‘우겨 넣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낳은 첫번째 문제는 방아쇠다. 원래의 P250그립 모듈에 끼워질 수 있으면서 P250의 FCU사이즈/형태에도 어떻게든 들어맞게 만들다 보니 스트라이커 격발식 권총의 거의 대부분에 적용되는 트리거 세이프티가 적용되지 않았다.
트리거 세이프티는 형태와 구조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결국 ‘제대로 누르지 않으면 방아쇠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구다. 글록에서 시작된 이래, 그래도 나름 성공했다고 할만한 스트라이커식 권총들에서는 거의 다 이것이 적용되어있다.
즉 P320은 방아쇠가 뜻하지 않게 움직이는 사태를 막아주는 첫번째 관문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만 해도 벌써 '빨간불' 이 하나 켜진 느낌이다. 하지만 P320의 문제는 단지 이것만이 아닌것 같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