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에 촬영된 식빵 써는 기계. 이게 미국인들의 식탁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이것 덕분에 빵의 소비가 늘면서 잼이나 버터같은 관련 상품의 판매고 역시 1930년대에 크게 늘었다고 한다. (Wikipedia)
1930년에 촬영된 식빵 써는 기계. 이게 미국인들의 식탁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이것 덕분에 빵의 소비가 늘면서 잼이나 버터같은 관련 상품의 판매고 역시 1930년대에 크게 늘었다고 한다. (Wikipedia)

 

 

영어 관용구에 “next best thing to sliced bread”, 즉 “썰려 나온 빵 다음으로 훌륭한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응? 썰려 나온 빵? 빵은 원래 썰려서 나오는거 아닌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는 기나긴 빵의 역사에서, 막상 썰려있는 상태로 팔리는 빵이 나온 것은 백년도 채 안된다. 1928년부터 빵 써는 기계가 나온 때 부터의 일이다. 물론 사람이 칼로 빵을 자른거야 빵과 칼이 함께 한 것과 같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겠지만, 기계로 깨끗하게 썰어서 식빵을 포장해 판다는 개념은 20세기에나 나왔다는 이야기다.

근데 이게 뭐 그리 훌륭하다고 저런 표현이 나왔을까. 이거 궁금해하는 분들은 덩어리 빵을 직접 썰어본 적 없다는 이야기다. 빵을 직접 손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깨끗하게 자르는 일은 은근히 성가시고 시간도 걸리며 지저분하다. 빵 부스러기 날리는게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간격 딱 맞추기도 힘들다. 미국 주부들은 빵을 미리 썰어서 팔자 그야말로 미친듯이 기뻐했다던가.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그들에게 빵을 직접 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인류가 바퀴를 처음 발명한 것에 버금가는 생활속의 혁명이었을 듯 하다.

하여간 10년도 채 안되어 미국인의 식탁에는 ‘미리 썰린 식빵’이 당연히 오르는게 됐다. 그런데 1941년, 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전쟁은 여기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무리 풍요로운 미국이라지만 전쟁으로 인해 많은 물자의 공급에 제약이 가해졌고, 1943년 1월 18일에는 마침내 ‘빵을 미리 썰어서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게 된다.

왜 이게 금지됐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부족했다. 빵이 빨리 말라 보관 기일이 짧아지는걸 막으려고 했다느니, 재료 낭비를 줄이려고 했다느니, 잘라서 빠는 빵은 포장지를 더 쓴다느니, 밀가루 가격 인상에 대한 대책이라느니, 빵 써는 기계 자체의 판매나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자원을 절약하려 했다느니 등등 많은 설명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납득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는 거셌다. 당시의 미국만 해도 집안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그리고 애들도 많았다. 한 주부는 “남편과 네 아이들한테 샌드위치 하나씩만 만들어 줘도 빵 10장을 잘라줘야 한다. 아침에 아침식사와 점심식사용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하니 매일 아침마다 빵 스무장을 잘라야 한다” 는 항의 투고를 지역 신문에 보내기도 했다. 주부들 뿐 아니라 남자들이 생각해도 빵을 썰어 파네 마네의 문제가 정부가 규제까지 해야 할 정도로 문제인지 의문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두 달도 안된 1943년 3월 초에 이 규제는 풀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규제를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에는 모든 부처가 “쟤요” 라며 다른 부처를 손가락질 했다는 것. 농무부에서 국방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서들이 다른 부서들에 책임을 돌렸다. 역시 공무원들은 어디나 책임 안 지려고 하는가보다. 하여간 하마터면 미국에서 썰어 파는 식빵이 전쟁 기간 내내 사라질뻔한 이 사건은 짧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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