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수병들은 대부분 목이 마르다. 물 이야기가 아니다. 술이다. 배 안에서는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경우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강한 금주정책을 펴고 있다. 항해중에는 원칙적으로 술은 못 마신다. 하지만 옛날부터 그랬던게 아니다.
영국 해군은 그록(Grog), 즉 물에 탄 럼주를 매일 배급하는 전통이 있었고 그 후계라 할 미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1842년까지 1.5파인트(0.7리터)의 “물에 희석한 증류주”(대개는 럼)를 배급했던 것이다. 심지어 종교적 이유등으로 금주중이거나 미성년자인 경우는 ‘술값’이 술 대신 지급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군 전체적으로 술을 멀리 하는 경향이 19세기 내내 두드러지면서 해군 역시 1842년에는 배급량을 0.1리터로 줄이더니 1862년에는 아예 배급을 중지했다. 그리고 1899년에는 해군 기지 및 선박 내에서의 주류 판매조차 금지했고, 1914년 7월 1일부터는 그나마 함정의 장교 숙소와 함장실에 비치가 허용되던 주류조차 반입이 금지되었다. 흔히 말하는 “뼛속까지 말라버린”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의료 목적’으로 소량의 주류를 배에 비축했다가 의무장교나 함장의 재량으로 수병들에게 배급하는 것은 가능했고, 실제로 2차 대전중 몇몇 잠수함 함장들은 적함을 격침한 뒤 맥주를 배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술이 모자란’것은 사실이었고, 이 때문에 영국 해군등의 우방국 해군 간부들과 회의가 있을 때에는 미 해군 함정에서가 아니라 술이 있는 다른 나라 해군 함정에서 회의를 여는 경우가 보통이었다고 한다(안주거리는 먹거리가 풍부한 미 해군이 가져오는게 예의).
현대에도 원칙적으로 미 해군은 금주정책을 지속하지만 예외는 있다. 45일간 항해를 계속 했고 입항이 5일 이상 남은 경우 “맥주의 날”을 지정해 1인당 캔맥주 둘은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 해군 함정들 중 일부는 입항 날짜를 일부러 미뤄 수병들에게 맥주를 마시게 한 뒤 입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맥주 마시는 날은 아주 축제 분위기라고…. 보통 이 날은 “강철 해변 피크닉”이라고 불리는데, 특히 갑판이 넓직한 강습상륙함과 항공모함에서 파티가 제대로 열린다.
하지만 이런 엄격한 금주정책은 미 해군이 예외적이다. 영국 해군의 경우 오래전부터 1갤런의 맥주나 1파인트의 와인, 반 파인트의 증류주(보통 럼)를 매일 배급받았고 앞서 언급한 그록은 1740년부터 등장했다. 1850년부터는 1파인트(71ml)의 럼주를 오전 11시에 모든 수병들에게 지급했는데, 계급에 따라 그냥 럼주를 주거나 두 배 분량의 물을 탄 그록으로 지급했다. 이 정책이 무려 1970년까지 계속됐지만, 배가 점점 첨단화되면서 결국 럼주 배급은 1970년 7월 31일자로 종료되었다.
(참고로 호주 해군은 럼 배급이 없었지만 캐나다 해군은 1972년까지, 뉴질랜드 해군은 1990년까지 럼주 배급을 계속했다)
캐나다 해군의 경우 술 배급은 안해도 배 안에서 판매는 계속 했는데, 결국 이것도 음주 난동 사례가 벌어지면서 2014년 12월에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면 금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영국 해군이 미 해군처럼 금주정책을 펴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특별한 날(예를 들어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같은) 때에는 럼 배급이 이뤄지며, 비번인 수병은 하루 세 캔까지 맥주를 사 마실 수 있으며 많은 배 안에 바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많은 유럽 해군이 마찬가지라고 한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 해군은 어떨까. 왠지 식사 시간마다 와인이 공짜로 나올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의외로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보통 배 안에 바가 설치되어 맥주나 와인, 위스키등을 판매하지만(샤를 드골 항모에는 네 곳의 바 설치) 1인당 하루 한 잔이 원칙이며(공짜 배급은 없다), 각자 돈을 내고 사 마셔야 한다. 또 구입에는 IC칩이 내장된 신분증을 이용하기 때문에 1인당 두번 구입할 수도 없다. 곧 근무할 인원들은 마실 수 없으며 조종사의 경우 비행 4시간 전에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다. 아무리 와인의 나라라지만 주정뱅이들한테 핵추진 함정 맡기기는 싫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