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존 버지스
범인 존 버지스

 

영화 속의 폭탄은 주인공이 해체하다 보면 빨간 전선을 끊을지 파란 전선을 끊을지 고민하다 뭔가 끊으면 타이머가 터지기 직전에 멈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법. 영화보다 더 기괴한 이야기가 폭탄을 둘러싸고 실제로 41년 전에 벌어졌다.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헝가리의 공군 조종사 Janos Birges(헝가리어로 어찌 읽는지는 모름)는 전쟁 말기에 소련군에 붙잡혀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지만 8년만에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갔다. 운 좋게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이름을 영어식인 존 버지스(John Birges)로 바꾸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조경업으로 큰 돈을 벌었고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끝.

…이러면 이야기가 안 된다.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떼돈을 번 사람이 그 돈을 다 날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중 하나가 도박이다. 하필이면 존 버지스는 미국에서 기껏 성공해놓고 도박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존 버지스는 도박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벌어놓은 돈을 완전히 날리고 이혼당했다. 결국 돈도 가정도 잃은 그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기로 했다.

1970~80년대 당시의 하비스 카지노 호텔. (Wikipedia)
1970~80년대 당시의 하비스 카지노 호텔. (Wikipedia)

 

1980년 4월 26일, 두 명의 남자(버지스 밑에서 한 때 일했던 직원들)가 큼직한 복사기를 가지고 네바다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경계선에 인접한 네바다 주 도시 ‘스테이트라인(어째 동네 이름도 ‘주 경계선’이야… 참 창의적이군요)’에 위치한 하비스(Harvey’s)라는 카지노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뭔가 배달왔거니 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이들은 건물 2층에 이 복사기를 놔두고 사라졌다.

한참 지난 뒤 수상하게 생각한 경비원이 자세히 살펴보자… 아니 이건 복사기가 아니잖아! 뭔가 수상해! 같이 있던 편지를 뜯어보니….

“이것은 폭탄이다. 아무도 해체할 수 없다. 300만 달러(오늘날의 물가로 100억원 이상)를 내놓아라. 심지어 이걸 만든 나도 해체할 수 없다. 반경 400m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피신시켜라. 하지만 돈을 내놓으면 최소한 안전하게 터뜨릴 수 있는 곳까지 운반하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다.”

당연히 경찰이 출동하고 FBI가 출동하고 나라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아 이건 아니구나. 하여간 난리가 났다. 이 호텔이 표적이 된 것은 존 버지스의 주장에 의하면 75만 달러를 이 호텔에서 잃었기 때문이라고….

문제의 폭탄. 아래 박스에 TNT 450kg이, 위 박스에 기폭장치가 달려있었다. 위아래 박스를 분리하는 것 만으로도 폭발하는 구조였다 (FBI)
문제의 폭탄. 아래 박스에 TNT 450kg이, 위 박스에 기폭장치가 달려있었다. 위아래 박스를 분리하는 것 만으로도 폭발하는 구조였다 (FBI)

 

출동한 FBI의 폭탄 전문가들은 이 폭탄을 X레이등의 수단을 동원해 자세히 살펴봤지만 정말 골칫거리였다. 내부 배선이 너무 복잡하고 여러겹으로 기폭장치가 달려있어 뭐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폭발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기폭장치 박스와 폭약 박스를 떼어내는 것조차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떼어내는 순간 스위치가 작동해 폭발!), 기폭장치와 폭약이 들어있는 박스의 뚜껑들 역시 여는 순간 폭발하게 되어있었다. 뚜껑을 고정하는 나사들 역시 기폭장치와 연결되어 돌리는 순간 폭발했고, 박스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도 드릴 날이 내부에 설치된, 전기가 흐르는 알루미늄 호일에 닿을 수 밖에 없어 폭발할 판이었다. 

심지어 내부에 물을 채워넣어 기폭장치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안쪽에는 수세식 변기에 쓰이는 부유(浮遊)식 밸브가 들어있어 물이 일정한 깊이까지 차면 폭발하게 되어있었다. 여기에 가운데에는 진동감지 센서까지 있었는데, 비록 무게추를 이용한 원시적인 것이었지만 일정 각도 이상 움직이면 폭발하는 아주 효과적인 것이었다.

FBI가 재구성한 당시 기폭장치의 모조품. (FBI)
FBI가 재구성한 당시 기폭장치의 모조품. (FBI)

 

FBI의 첫 번째 작전은 범인인 존 버지스를 붙잡아 해체방법을 털어놓게 하는 것이었다. 범인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돈을 가져오라고 지시했으니, 이를 이용해 범인을 잡자는 것이었다.

조종사 면허를 가진 존 버지스의 계획은 헬리콥터가 돈을 가져오면 조종사를 총으로 위협해 헬기를 탈취해 돈을 가지고 빠져나가자는 것이었고, FBI역시 이를 간파하고 무장 요원을 헬기 안에 숨게 한 뒤 다른 헬기로 추적하는 등 대책을 세웠으나….

결국 범인들은 헬기와 만나는데 실패했다. 추적을 따돌리느라 아주 복잡하게 접선장소를 알려주다 보니 FBI가 엉뚱한 장소로 가 버린 것이다.

이제 FBI는 마지막 수단을 강구했다. 해체하는 것. X선 사진으로 내부 구조를 연구한 FBI의 전문가들은 성형작약으로 위의 기폭장치만 무력화시키면 아래쪽의 폭약은 터지지 않고 무사히 끝나리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해서 4월 27일, FBI는 C4폭약으로 만들어진 성형작약을 설치한 뒤 원격으로 점화시켰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폭탄이라도 FBI전문가들의 실력이면 얼마든지

 

 

 

 

 

 

 

(Wikipedia)
(Wikipedia)

웁스

현지 방송 영상 아카이브. 아니 왜 남의 불행에 박수들 치고 그러세요... 남의 불행은 꿀맛?

 

FBI는 기폭장치 안에도 소량의 폭약이 따로 들어있는걸 발견하지 못했고, 성형작약이 터지자 이 폭약이 터지면서 결국 대략 1,000파운드(약 450kg)의 건설용 다이너마이트가 일제히 폭발해 버린 것이다.

용케도 건물은 안 무너졌지만 당시 돈으로 1,800만 달러(오늘날의 물가라면 얼추 600억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이 호텔은 물론 옆의 하라스 호텔까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FBI요원부터 투숙객에 이르기까지 폭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FBI의 수사로 범인들은 모두 잡혔다. 범인인 버지스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범죄에 협력한 두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증언하는 댓가로 결국 형은 면제받았으며 범죄에 협력한 두 전 직원들 역시 위협을 받아 협력했다는 이유로 가벼운 형량만 받았다. 버지스는 결국 14년을 복역한 끝에 1996년에 간암으로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록 폭탄 실물은 폭발과 함께 사라졌지만, FBI는 모조품을 만들어 최근까지도 교육용으로 사용한다고 전해진다. FBI에 의하면 이들이 직접 살펴본 폭발물들 중 이보다 더 복잡한 것은 없었다고 한다.

"나는 하비스에서 폭탄맞았어요"

물론 이런 큰 사건에 현지의 봉이 김선달들은 T셔츠등의 기념품으로 짭잘한 이익을 챙겼다던가.

하비스 카지노 호텔은 안 망하고 보험금 타서 꿋꿋하게 장사를 계속했고 현재도 그 자리에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의 하비스 (Wikipedia)
오늘날의 하비스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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