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체코에 제공된 레오파르트2A4 (체코 국방부)
최근 체코에 제공된 레오파르트2A4 (체코 국방부)

 

우크라이나에 서방측 전차가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미 들어가는 것은 확정적이다. 영국의 챌린저2 전차 14대의 제공이 확정됐고, 폴란드도 레오파르트2A4를 14대 제공할 것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시는바와 같이 독일이 여전히 여기에 반대하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일단 폴란드와 영국이 스타트를 끊으면 그 뒤에도 독일이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폴란드는 원산국인 독일이 반대해도 폴란드에 레오파르트 2A4를 14대 제공할 뿐 아니라 나머지 보유분 (백 수십여대 정도) 전량을 제공할 분위기이고, 아마 이렇게 되면 결국 독일로서도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려워질 듯 하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수 있는 전차는 몇 대가 있는지, 그리고 이것들이 전황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지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수 있는 전차는 레오파르트2 시리즈 중 가장 구형인 레오파르트2A4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전차들은 오래된 만큼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그래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데 부담이 비교적 적다. 현재 대부분의 유럽내 레오파르트2 계열 보유국들은 2A4를 일종의 2선급 내지는 예비용 정도의 위치로 쓰고 있고, 더 신형인 2A5나 2A6계열을 주력전차로 보유중으로, 실제로 핀란드의 경우 2A4 대부분을 예비용으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챌린저2 (위키피디아)
챌린저2 (위키피디아)

 

챌린저 2대 14대가 들어간다는 것도 확정되었으나, 이것들은 솔직히 전황에 눈에 띄는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수량 자체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영국군이 보유한 챌린저2의 수량(현재 운용중인 댓수 227대)을 생각하면 아무리 영국이 애써도 여기서 10여대 추가되는 정도가 한계일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추가 물량의 제공 자체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군에 납품된 챌린저2의 수량 자체는 386대라 227대의 운용수량을 제외하면 거의 160대가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중에는 운용 불가능한 상태의 차량들도 있을 것이고 상당수는 현재, 그리고 장기적인 챌린저3 업그레이드 후의 운용 부품으로 쓰기 위해 남겨놓아야 할 상황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14대는 영국이 거의 ‘쥐어 짠’ 수량으로 보인다.

게다가 탄약등 소모품의 보급도 문제다. 챌린저2는 영국군과 오만군만 운용중인 만큼 모든 부품을 영국에서 조달해서 우크라이나로 보내줘야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차포탄도 영국만 생산하는데, 영국군 자신도 장기적인 탄약 조달이 문제라 나토 규격 포탄을 쓰는 120mm 활강포를 탑재하는 챌린저3로 업그레이드하려 할 정도다. 즉 현실적인 전력으로서의 유지를 감안해도 14대 넘게 우크라이나에 넘겨주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레오(레오파르트)2A4의 수량은 어떨까. 폴란드는 142대의 2A4를 운용중이며 이 중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 넘겨줄 기세다. 즉 거의 100대 정도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또 핀란드도 독일이 허락만 하면 자국군이 보유한 2A4 대부분을 넘겨줄 것으로 알려졌는데, 총 139대 중 자주 대공차량이나 가교전차등으로 개조한 물량을 제외해도 100대 이상을 제공할 수 있는 셈이다.

즉 핀란드와 폴란드만 해도 200대 정도의 물량은 확보 가능한 셈인데, 여기에 108대의 2A4를 보유중인 스페인도 이미 작년에 30대 제공의사를 밝힌 바 있고(독일의 반대때문에 무산) 우크라이나 지원이 본격화되면 이 물량 대다수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즉 얼추 300대 가까운 물량이 지원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일부에서는 이 정도가 아니라 100대만 제공되어도 뭔가 ‘게임체인저’가 될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레오2A4정도가 게임체인저로까지 불릴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다. 서방제 3세대 주력전차라고는 하지만, 이미 40년 이상 전의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게 문제이기 때문이다.

T-90M (위키피디아)
T-90M (위키피디아)

 

레오2A4는 1991년의 걸프전이나 2003년 이라크전 정도라면 모를까, 러시아군의 T-80이나 T-90계열 상대로는 우세를 장담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120mm 활강포라면 이들 전차를 먼저 보고 먼저 쏠 때 여전히 승리를 얻을 가능성이 제법 있겠지만, 반대로 러시아쪽이 먼저 보고 먼저 쏘면 반대로 패배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마디로 방어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레오2A4의 방어력 한계는 이미 터키군에서 운용중이던 물량들이 시리아에서 나름 보여준 셈이다. 시리아에서 최소한 8대의 레오2A4가 동영상이나 사진등을 통해 격파된 것이 확인됐고, 실제로는 그 이상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제 코넷 대전차 미사일과 미국제 토우 대전차 미사일 모두 레오2A4를 격파시킬 수 있던 것으로 보이며, 몇몇 차량은 마치 러시아 전차처럼 ‘포탑사출’까지 일으키는 처참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2A4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일단 전차의 숫자 자체를 늘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전차부족에 시달린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러시아군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숫자를 보유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러시아는 여전히 바흐무트 방면을 중심으로 공격을 계속하고 있고 벨라루스 방면을 통한 2차 공세 이야기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하면 전차 수량을 추가로 늘려야 할 필요 자체가 제기되는 것이다.

체코로부터 원조받은 T-72B
체코로부터 원조받은 T-72B

 

반면 그 동안 지원되던 T-72등의 구 공산권 전차는 이제 공급할 물량이 점점 소진되어가는 중이다. 아직 폴란드가 보유한 PT-91/T-72계열 전차들이 다 간 것은 아니지만, 사백 수십여대의 보유량 중 260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 등 유럽에 남은 T-72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간 상황이다. 슬슬 우크라이나에 익숙하건 아니건 서방제 전차가 제공되어야 할 타이밍이 다가오는 셈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T-64나 T-72계열 전차들의 주포 관통력으로는 러시아군의 전차들 중 T-90M등의 최신 전차를 상대하기 버겁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전차들도 파괴되기는 했지만, 전차대 전차의 대결보다는 재블린이나 칼구스타프등 대전차화기에 의한 공격이 주된 원인이다.

레오파르트2A4의 경우 그래도 120mm 활강포 덕분에 최소한 T-64/72보다는 공격력이 강하며, T-90M이나 T-80BVM등의 러시아 최신 전차 상대로도 어떻게든 대적해 볼 구석은 있다. 또 아무리 구식이라도 열상 야시장비와 디지털화된 사통장치, 주행간 사격이 가능한 포안정장치, 독립된 전차장 조준경등을 갖춘 제3세대 주력전차인 만큼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나름 무시못할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사실 전력으로서의 수준만 감안하면 당연히 레오2A6를 주는게 훨씬 강력하겠지만, 이것들은 나토 국가들의 주력 전차라 지원하기가 매우 어렵다- 단, 스웨덴이 일부 레오2A5를 줄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고, 폴란드 역시 2A5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검토중인 듯 하다)

여기에 장기적인 군수지원이라는 측면에서도 레오파르트2계열에는 장점이 있다. 2A4만 해도 현재 운용중인 NATO 국가가 10개국에 이른다. 이 국가들 중 대다수는 설령 전차 자체는 안 보내도 부품을 보내거나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온 파손된 전차를 고쳐주는 정비지원을 하는 등의 간접지원을 할 수 있고, 또 레오파르트2계열 전차에 사용되는 부품 중 상당수는 현재도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군수지원 측면에서 가지는 장점은 확실하다.

미해병대가 운용하던 M1A1SA. 우크라이나에 들어간다면 이 버전이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다 (위키피디아)
미해병대가 운용하던 M1A1SA. 우크라이나에 들어간다면 이 버전이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다 (위키피디아)

 

하여간 이처럼 레오2A4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전차 지원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미국의 M1에이브럼스 계열 전차는 어떨까. 현실적으로 지원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며, 미국 자신도 부정적이다.

물량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 해병대가 퇴역시키면서 M1A1의 개량형인 M1A1SA가 상당수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16대가 폴란드에 넘어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200대 정도는 우크라이나에 넘겨줄 수 있는 물량은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문제는 전차의 수량만이 아니다. 군수지원이라는 측면에서 우크라이나가 이걸 전장에서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연료소모부터 문제다. 레오2계열의 연료소모도 만만찮으나 M1계열은 더하다. 1990년에 미군에서 실시된 테스트에서는 속도가 동일할 경우 거의 80%의 연료를 M1계열이 더 소모하는 것으로 나왔다. 물론 그 뒤의 각종 개량등으로 이 수치가 변하기는 했겠지만, 어쨌든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만만찮은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군의 군수지원 역량이 미군이나 나토군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만큼, 솔직히 레오2 계열의 운용에도 상당한 고생을 할 그들이 M1계열에 이르면 정상적인 운용 자체가 가능할지 심히 의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미군이 영국처럼 소수의 M1계열을 우크라이나에 원조할 가능성은 있다. 실제 전력으로서 보다는 상징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독일은 현재 나토 국가들이 운용중인 레오2계열의 우크라이나 원조를 계속 거부하면서 미국이 M1계열을 제공하면 생각을 바꿔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일이 있다.

사실 영국의 챌린저2 원조도 진짜 전력으로서 큰 의미를 기대했다기 보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 우크라이나에 서방제 제3세대 주력전차도 줄 수 있다는 상징성 말이다. 이를 통해 독일의 전차제공 반대 명분을 차츰 무너트리려는 것이다. 독일은 영국의 원조 후에도 미국을 거론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미국이 하다못해 1개 중대나 대대 정도의 물량만 제공해도 독일의 거절 명분은 약해질 것이다.

어쨌든 서방제 전차의 제공은 그 자체로 무슨 게임체인저가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쟁의 장기화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지원이 “이걸 전력화 할 때까지 우크라이나가 살아는 있을까?”를 전제로 이뤄진 반면, 이제는 단기간에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 전제에 깔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F-16전투기 지원까지 거론할 정도인데, 이런 상황을 보면 최소 올해 안에 전쟁이 끝나기는 어렵다고 보는 듯 하다.

앞으로의 상황을 주목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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