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에서는 블랙호크 성능개량을(특수전용 기체 제외) 포기하고 2040년까지 쓰다가 차세대 고기동 헬기로 대체하기로 했다. 블랙호크의 도태가 시작되는 시점이 2030년대이니 2030년대부터는 차세대 고기동 헬기가 도입되어야 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블랙호크를 아예 수리온 확장형으로 대체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수리온이라는 플랫폼의 한계로 인해 이는 안하기로 했고, 블랙호크 성능개량에 들어갈 예정이던 비용은 수리온 동력계통(주로 기어박스)의 개량에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호크를 대체할 기종으로 도입될 차세대 고기동 헬기는 미국의 FVL급 성능, 즉 "아파치보다 빠른" 최고 시속 약 450Km/h급의 고속 기체가 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것을 해외 직도입이나 면허생산이 아니라 국내 개발로 조달하자는 논의가 계속 진행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최근 나왔다는 것이다.
수리온도 국내 자체개발이 아닌 해외의 기종, 그것도 비교적 진부화된 기종을 베이스로 개발해야 해 결과적으로 애매한 체급의 기체가 되어버리고 성능도 엔진 출력에 비해 부족한(기어박스 개량은 그 때문에 진행) 상황이 되어버렸다. 실전배치 시점에서 시대에 부응하거나 시대를 앞선 기체가 결코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FVL급 기체는 미국에서도 갓 도입되는 최신 기체다. 과연 이걸 자체개발은 둘째치고 수리온처럼 합작개발 형태로라도 독자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맘대로 수출도 가능한" FVL급 기체를 확보하기는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FVL은 속도만으로도 현재 회전익기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 그대로 차세대 성능을 가진 기체다. 독자 개발이 가능한지, 가능하다 치면 과연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허용되는 예산과 시간범위 안에서 가능한지부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수리온처럼 해외 모델 베이스로 합작개발하되 우리 맘대로 해도 되는 그런걸 만드는 것 역시 가능성은 낮다. 수리온의 합작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간단하게 말해 완성된 기체가 합작사(에어버스 헬리콥터)의 수출에 타격을 주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수출은 번번히 실패했으며 앞으로 수출이 이뤄진다 해도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준까지는 바라기 힘든게 현실이다.
FVL급 기체는 이야기가 다르다. 도입이 예정되는 2030년대면 미군도 동급 기체의 배치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다. 이런 최신 기체를 너그러이 기술이전해서 합작개발한 다음 "너희 맘대로 수출해도 돼" 라는 인심 좋은 해외 합작 파트너가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고 수리온의 확장형을 개발해 블랙호크를 대체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수리온을 오리지널이 된 쿠거급으로 되돌린다는 것인데, 아무리 첨단기술이 적용된다 해도 결과적으로 블랙호크와 동세대 기체로 블랙호크를 대체한다는 면에서 군 헬기전력의 수준이 미래로 못 나가고 과거에 얽매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애당초 블랙호크를 업그레이드 없이 앞으로 거의 20년을 더 쓴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지만, 정말 FVL급 기체를 독자개발이나 수리온식 합작개발로 조달해 이를 대체하는 방식 역시 비현실적이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차세대 기동헬기 만큼은 '개발'이라는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해외 기종의 면허생산을 통해 적합한 기체의 조달과 국내 산업기반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쪽으로 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