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의 전쟁영화와 게임, 애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켈리의 영웅들(1970)'
예로부터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서는 모험 이야기는 절대 악을 물리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용사들의 이야기와 악한 권력자에게 붙잡힌 히로인을 구원하러 가는 이야기만큼 강렬한 동기 부여를 주는 소재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주로 판타지 장르나 해적을 모티브로 한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며, 현재도 수많은 소설과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보물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들의 우여곡절’을 테마로 삼는 경우는 꽤나 흔한 편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작품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보물찾기’라는 장르에 속한 작품으로, 언뜻 보면 식상한 소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부분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인류사를 비판하는 일종의 반전주의 영화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개그로 일관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바로, 브라이언 G. 휴튼(1935년 1월 1일~2014년 8월 19일) 감독의 1970년작 영화, ‘켈리의 영웅들(Kelly’s Heroes)’다.
켈리의 영웅들’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9월, 프랑스 모젤 강의 지류를 따라 발달한 로렌 지방의 중심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였던 낭시(Nancy)를 두고 미 육군 제 12군단 예하 제 4 기갑사단, 제 35 보병 사단 및 제 80 보병 사단과 독일 국방군 제 48 장갑척탄병 군단이 열흘 간에 걸쳐 벌인 치열한 공방전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삼아 제작된 영화다. 이른바 ‘지크프리트 라인 작전(파리를 해방한 연합군이 라인 강 유역으로 진격한 일련의 작전을 뜻함)’ 중에 벌어진 여러 전투들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에 하나로 꼽히는 낭시 전투는 당시 미 육군과 독일국방군 모두 통틀어 전사자와 사상자가 고작 열흘 동안 약 7천명 가까이 발생했던 전투이기도 하다.
영화는 낭시 전투 당시 미군의 박격포 부대가 보병 소대에게 오인 사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는 소대장이었다가 아군의 작전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일병으로 강등된 주인공 켈리(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군의 잘못된 처사에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는데, 우연히 포로로 잡힌 독일국방군 장교가 실은 정보 장교였고, 이 장교를 심문하던 도중 주둔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납으로 도금되어 위장된 채 보관되어 있는 금괴가 무려 1600만 달러 어치(6500만 독일 마르크)가 있고 이를 독일군이 비밀리에 운반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켈리는 이 독일군 장교에게 술을 처먹인 후, 자세한 금괴의 수와 여러 가지 정보를 얻게 되고, 이 금고를 자신이 탈취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켈리는 박격포 부대의 선임하사, 보급관, 괴짜로 알려진 전차병 오드볼 병장(도널드 서덜렌드), 그리고 자신들의 소대원들을 금괴로 매수하고 일생일대의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1970년 6월에 미국에서 개봉을 한 ‘켈리의 영웅들’은 원래 1968년에 영국의 영화 및 TV 각본가로 활동하던 트로이 케네디 마틴(Troy Kennedy Martin)이 TV시리즈 제작을 목표로 작성했던 각본을 베이스로 제작된 영화다. 원래는 전쟁 영화로 제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 각본의 주된 주제는 바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역대 급 절도 사건’이었다. 그는 1956년부터 ‘절도 사건’에 대해 큰 흥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닥치는 대로 역사상 유명한 절도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1945년에 미국의 정보국 요원들과 독일의 민간인 협력자들이 작당하여 독일 바이에른에 있는 금괴를 훔쳤다는 기록이 있다’는 연락을 당시 MGM의 연구 책임자 중에 한 명이었던 엘리엇 모건(Elliot Morgan)으로부터 전달받아, 이걸 테마로 삼아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당초에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는 일종의 역사 로맨스 판타지 영화로 구상을 했었다고 한다. 원래는 영국에서 제작할 의도로 여러 영화사에 각본을 제시했지만 퇴짜를 맞았고, 그러다가 미국에서 제작을 하게 되었다고.
켈리의 영웅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념비적인 전쟁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 ‘나름 현실적이고 납득이 가는 시대적 배경에 상당히 신경을 쓴 무기나 복장, 소품 고증, 그리고 신랄한 군에 대한 비판 요소를 모두 갖추면서도 작중 내내 웃음보가 끊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 있다. 이전에도 물론 전쟁을 테마로 삼은 코미디 영화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단순한 개그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마저도 개그를 선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차대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메카시즘 광풍 속에서, 자국을 비판하거나 혹은 전쟁의 부조리를 알리거나 이를 직설적이던, 혹은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검열의 대상이 되거나 세간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켈리의 영웅들’이 개봉한 1970년의 경우,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이기도 했기에 더더욱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테마의 전쟁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미국의 경우 2차대전을 경험한 세대들이 기성세대로 군림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질풍노도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의 전성시대)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400만 달러라는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박스 오피스 흥행 결과는 520만 달러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영화가 되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패튼 대전차군단(원제는 심플하게 Patton)’같은 초 거대 걸작이나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야전병원의 이야기를 다룬 ‘M.A.S.H.’, 죠셉 사전트 감독의 SF 걸작 ‘콜로서(Colossus: The Forbin Project)’, 진주만 공습을 정말 자세하게 다룬 미일 합작 영화 ‘도라 도라 도라’, 조지 시튼 감독의 재난 영화 ‘에어포트(Airport)’, 그리고 그야말로 전세계 모든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로맨스 ‘러브 스토리’까지 워낙 기라성 같은 영화들이 많이 개봉한 해가 바로 1970년이기도 했기에, 저예산을 들인 영화로서는 나름 선방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당시 흥행 면에서는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리의 영웅들’은 전설로 남았다. 그간의 전쟁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는 물론, 밀덕들과 실제 2차대전 당시 참전했던 베테랑들에게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사해, 전쟁 영화 장르의 레전드 급 영화로 남게 되었다. 박스 오피스 흥행 자체는 실패했지만 이후 비디오 렌탈 등의 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자주 방영해주는 단골 안방극장 영화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전쟁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고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영화가 되었다.
게다가 전쟁 중에 ‘다른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탈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아군의 승리로 이어지거나 혹은 어쨌든 좋은 결말이 된다’는 아이디어(켈리와 그의 동료들이 진격하는 과정은 실제로 낭시 전투 당시 35사단이 진격한 루트를 거의 답습한다)는 당시로서도 참신했는지, 이후 꽤 많은 코미디 전쟁 영화들이 ‘켈리의 영웅들’과 흡사한 서사를 다루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베끼기도 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1975년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장 폴 벨몽도의 외인부대(Les Morfalous)’가 있겠다. 한참 나중의 일이긴 하지만1999년에 죠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던 풍자 영화, ‘쓰리 킹즈(The Three Kings)’도 이 영화에서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다.
작중 등장하는 ‘오드볼 병장’이 말 그대로 마개조한 M4 셔먼을 제외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전차들은 대부분 1944년 9월 낭시 전투 당시에 동원된 셔먼들에 상당히 근접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미군 보병들이 흔하게 사용했던 M1 개런드나 M1 카빈 소총의 등장이 거의 없는 건 좀 아쉬운 부분이지만, 당시 보병들의 복장이나 군장 등에 대한 고증도 상당히 훌륭하고 특히 독일국방군 병사들의 고증이 어마무시하게 철저한 편이다. 물론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티이거 전차의 경우에는 실물을 구하기 어려워 구 소련제 T-34를 개조한 물건이었지만 그래도. 영화는 대부분 오늘날의 몬테네그로에 해당하는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당시 유고슬라비아가 친 소련 국가임에도 상당히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타고 있던 나라였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있지만, 사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국권 국가들은 영화 장르에서는 꽤나 협력을 많이 했다. 역시 흥행 면에서는 말아먹었지만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실제 일어났던 역사에 거의 근접하는 전투 스케일을 재현한 영화, ‘워털루(Waterloo)’도 이 시기에 제작되어 1970년에 개봉한 영화라는 걸 생각하자면 ‘켈리의 영웅들’이 유고슬라비아에서 촬영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
게다가 유고슬라비아는 친 소련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들이 무상으로 제공한 서방제 무기들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또 현역으로 운용하고 있던 몇 안되는 국가이기도 했으며, 2차대전 당시에는 루마니아, 체코 공화국과 더불어 독일 외 지역에서 가장 많이 독일군의 군용품을 생산했던 나라였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예산으로도 쉽게 전쟁 당시의 무기들을 구할 수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촬영 당시 무기들만 대여한 게 아니라 현역병들을 대거 동원해서 촬영에 상당한 협조를 하기도 했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그래서 나름 전투 씬의 스케일이 꽤 큰 것도 이 영화의 특징.
탈영한 병사들이 독일군이 숨겨놓은 금괴를 나눠 갖고 도망을 가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금괴가 숨겨진 동네를 방어하고 있던 독일군들까지 매수해서 서로 나누어 갖고 튄다는 설정은 코미디 그 자체지만, 영화 후반우에 오드볼 병장의 전차들과 독일군 전차들 간의 전투 씬은 오늘날에도 ‘전차 전투를 아주 잘 묘사한 명 장면’ 중 하나로 꼽히며, 이는 후에 제작된 수많은 전쟁 영화의 모범답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차를 주요 테마로 삼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작품들에서도 ‘켈리의 영웅들’의 전투 장면을 오마쥬하거나 아예 대놓고 베끼는 경우들이 여전히 많은 편이다.
스피커를 포탑에 달고 미군의 군가인 ‘공화국 전투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를 틀어놓고 독일군을 싹슬이하는 장면은 50년이 지난 현재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월드 오브 탱크’ 같은 전차전 게임에서 이를 재현한 모드를 선보이는 전차 덕후들도 있다. 이 밖에, T-34를 개조하여 티이거 전차의 레플리카를 만들어내는 건 이제는 전쟁영화용 소품을 제작하거나 2차대전을 재현하는 리인액트 행사 등에서는 꽤나 흔해 빠진 일인데, 이것 또한 ‘켈리의 영웅들’이 후세에 준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말 안방극장용으로 자주 TV에서 방영된 영화이기도 하고, 필자가 소속된 국내 유일의 밀리터리 전문 잡지, ‘월간 플래툰’에서도 수 차례에 걸쳐 다룬 적이 있다. 다만, 연세를 지긋이 잡수신 어르신들께는 ‘켈리의 영웅들’이라는 제목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략대작전’이라는 제목이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옆나라 일본에서도 ‘전략대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었다. 사실 전략 같은 건 거의 등장하진 않지만.
여담이지만, 영화의 모티브가 된 ‘2차대전 당시 미국 정보군 요원들과 독일 민간인들이 바이에른에서 나치스의 금괴를 탈취해 달아났다’는 썰은 1997년에 이르러 일부 사실이었음이 드러나서 세간의 충격을 주기도 했다. 2차대전 이후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나치스 독일이 연합국과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약탈하거나 은닉한 재산과 금품을 환수하기 위해 1998년까지 활동했던 금화환수위원회(Tripartite Commission for the Restitution of Monetary Gold, TCRMG)가 밝혀낸 것이다.
TCRMG의 영국 측 수석 연구원 중 한 명이었던 이언 세이어(Ian Sayer)는 1975년부터 약 9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미국 정보원들이 독일 국방군 및 나치스 친위대 장교 일부와 공모하여 금괴를 은닉하였고, 이를 미국 정부가 은폐해왔다’는 기록을 1984년에 발표했으나 미국은 이 사실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일축해왔는데, 1996년 9월 27일에 이르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서 사라진 금괴 일부가 발견되어 TCRMG로 이관되었고, 이후 영국 국립 은행으로 금괴가 이관되어 1997년 5월 8일에 공개되었다. 이 금괴들은 금괴 위에 납으로 위장하려던 흔적이 발견되어, 결과적으로 ‘켈리의 영웅들’이라는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 영화가 아닌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픽션’이 되게 되었다. 보병 장교와 전차병들이 아니라 정보국 요원들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ㅋㅋ.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