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 개발하여 영길리를 승전국으로 이끈 그 기관총이 케이로 재탄생..했을리가 ㅋㅋ
BREN 경기관총(이하 브렌건)은 1930년대 영국에서 제작된 경기관총(LMG)으로, 1992년까지 다양한 역할로 운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및 영연방 군대의 주력 보병용 경기관총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전쟁에서도 운용되었고 베트남전과 포클랜드 전쟁, 걸프전, 그리고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도 활약했을 정도로 그 운용 역사가 상당히 긴 총이기도 합니다.
브렌건은 체코슬로바키아의 ZGB 33 경기관총의 라이선스 버전이었으며, 그보다 앞서 탄생한 ZB vz. 26의 수정판이었습니다. ZB vz. 26은 1930년대 영국군 관계자들이 총기 시험 대회에서 테스트한 바 있었고, 독특한 상부 장착 곡선형 박스형 탄창, 원추형 소염기, 그리고 빠른 총열 교체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브렌건의 설계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건스미스였던 Václav Holek이었습니다. ‘Bren’이라는 이름은 ZB vz. 26이 설계된 체코슬로바키아의 도시 브르노(Brno)와 영국 왕립 소형무기 공장이 위치한 엔필드(Enfield)에서 유래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영국군은 크게 두 종류의 기관총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빅커스(Vickers) 중기관총이었고 다른 하나는 루이스(Lewis) 경기관총이었습니다. 빅커스는 무거웠고 장시간 운용 시 총열이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을 공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에, 주로 고정화기로 운용되었습니다. 루이스 경기관총은 빅커스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총이었지만 고장이 잦은 편이었지요. 특히 야전 시에 총열 교환을 할 수 없었기에 지속 사격 중 과열로 인한 작동불량은 큰 골칫거리 중에 하나였습니다.
1922년, 영국 육군의 소화기 위원회(British Army Small Arms Committee)는 루이스 경기관총을 대체할 신형 총기 도입 사업에 착수하며, 매드센(Madsen) 기관총, 브라우닝 M1918 자동소총(BAR), 호칰키스 M1909 기관총, Beardmore-Farquhar 소총 등을 비교하는 시험을 시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는 BAR를 잠정적인 차기 경기관총으로 낙점하지만, 루이스 경기관총의 보유량이 상당히 많은데다 영국의 재정상황이 몹시 좋지 못했기에 BAR 도입은 무산되고 맙니다.
영국 육군은 이러한 테스트를 1932년까지 진행하며, 앞서 나열한 총기들 외에 SIG Neuhausen KE7, Vickers-Berthier, 체코슬로바키아의 ZB vz. 27 등이 비교 시험에 포함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ZB vz. 27은 기존의 7.92mm 마우저(Mauser)탄에서 .303 브리티시 탄환으로 교체가 되고, 이물질 발생에 취약했던 코다이트(Cordite)탄약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편, 영국 육군이 아직 신형 경기관총을 채택하지 못하고 여러 모델들을 테스트하며 고민에 쌓여 있을 무렵, 영국령 인도 육군(British Indian Army)가 본국보다 먼저 신형 경기관총을 채택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영국령 인도군이 인도 독립으로 해산하게 될 때까지 폭 넓게 운용된 기관총이 바로 Vickers-Berthier 경기관총입니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ZB vz. 27은 가스튜브를 단축하거나 영국 육군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철저하게 반영하는 개량 작업에 착수하며, 특히 탄창과 총열, 삼각대 거치 마운트 및 탄피 배출을 위한 슬라이드 방식의 덮개와 개선된 피스톨 그립 등이 적용된 ZGB 33이 최종적으로 영국 육군의 승인을 받아 1935년 5월 24일부터 브렌(BREN)이라는 명칭으로 제식 채용됩니다.
브렌건은 영국군이 1차대전 당시부터 주력소총으로 운용한 리 엔필드 소총과 동일한 탄환의 사용이 가능했으며 별도의 냉각기구를 달지 않고 총열을 신속하게 교체가 가능했습니다. 가스 피스톤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Brno에서 생산된 초기 모델들 및 시제품과 달리 외부 방열판을 제거한 대신에 총신 및 약실 내부에 크롬 도금 처리를 하여 내구성을 잡았고 총열 교환 방식도 20초 내외로 교체가 가능했습니다. 가스 피스톤 튜브에는 가스압 조절기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이를 활용해 외기 온도의 변화에도 별 영향 없이 자동 발사가 가능했고 가스압을 조절하여 발사속도에도 변화를 줄 수 있었습니다. 조절량에 따라 분당 480~540발 정도로 변화를 줄 수도 있었지요.
벨트 급탄 방식이었던 .303 빅커스(Vickers) 기관총에 비해 탄창 급탄 방식을 사용한 탓에 재장전을 자주 해야 한다는 단점은 존재했지만 가벼운 중량으로 일선 병사들에게 사랑받았고, 추축국 및 다른 연합국 운용 경기관총에 비해 발사속도는 다소 느렸지만 되려 공랭식 총열의 과열을 방지하고 보다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해진다는 장점으로 통했습니다. 탄창을 사용함으로써 벨트 급탄식 기관총들에 비해 탄환이 외부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장점도 존재합니다. 단, 탄창의 스프링 내구성이 높지는 못해 30발을 다 채우면 오히려 급탄 불량이 발생하기도 해서 영국군 병사들은 대부분 24~7발 정도로 탄창을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상부에 탄창을 삽입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조준기는 급탄부를 피해 왼편으로 치우쳐 있었는데, 이는 곧 오른손잡이 사수만 운용 가능하다는 단점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결 후 많은 수의 브렌건이 7.62×51mm NATO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영국 육군 및 해병대에서 FN MAG의 라이선스 생산 버전인 L7 GPMG를 채용할 때까지 일선에서 활약했고, 이후 영국군이 SA80 시리즈를 제식으로 채택하고 경기관총의 역할을 L86 LSW(Light Support Weapon)에 내주게 됨으로써 일부 차량 거치용 총기로 제한적인 운용이 이루어지다가 2012년에 정식으로 퇴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말.입.니.다.
만약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다량의 브렌건을 운용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계속 브렌건을 운용하다가 1980년대 언저리에 K2 소총과 기존에 운용하던 브렌건을 바탕으로 “케이(K)” 브렌건을 채용했다고 하면 과연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ㅎㅎ 뭐 적어도 “총검술 안 해서 좋은게 유일한 장점”이라는 K3 경기관총보다는 장병들의 신뢰가 높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니 그냥 사용한 정도가 아니라 나름 독자적인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해병대를 위한 "상륙전 전용 모델"도 만들고 특전사 예하 부대들을 위한 "특전 전용 케이(K)브렌건"도 만들고 막 그랬다면 말입니다 우헤헤헤헤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뭐, 그렇다구요. 후후후후
이상, 플래툰 매거진 김찬우 기자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