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 프란츠 폰 베라 대위.
오늘의 주인공 프란츠 폰 베라 대위.
영국에서 격추당한 폰 베라의 전투기
영국에서 격추당한 폰 베라의 전투기

 

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캐나다에는 많은 추축군 포로들이 수감됐다. 이들을 북미 대륙에 잡아놓는 것은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영국에는 많은 포로들을 먹여살릴 식량 자체부터 부족했다. 또 어차피 영국을 출발해 북미대륙으로 가는 수송선은 대부분 비어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포로들을 채워넣으면 되니 수송수단 걱정도 그닥 없었다.

무엇보다 북미대륙에서는 포로의 탈출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탈출해 봤자 독일로 돌아가 합류할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수용소를 탈출한다 한들, 지들이 대서양을 헤엄쳐서 건너겠어? ㅋㅋㅋㅋㅋ 아마 이런 생각으로 대서양 너머로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ㅋㅋ”

물론 직접 헤엄쳐서 건넌 것은 아니지만, 북미 대륙에서 탈출해 독일까지 무사귀환한 ‘기적의 포로’가 있었다.

주인공은 탈출 시점에서 27세의 프란츠 폰 베라 대위. 1940년 9월 5일에 영국 상공에서 Bf-109를 몰다 격추당한 전투기 조종사였다. 당시 영국에는 많은 독일 공군 조종사가 포로로 잡혔으니 여기까지는 별 신선한 맛이 없다.

하지만 그는 시작부터 ‘독했다’. 붙잡힌지 한달 하고도 이틀 지난 10월 7일에 그는 두번째(그렇다. 처음도 아니다!) 탈출 시도를 하다가 잡혔다. 12월 17일에는 다른 수용소로 이감됐다가 다른 포로들과 함께 땅굴을 파고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다. 네덜란드 망명 조종사인 척 연기해서 어색한 영어로도 의심을 사지 않고 인근 영국 공군기지까지 들어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그 곳에서 비행기 한대의 조종석에 앉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결국 그의 정체를 눈치챈 영국 공군에 의해 체포당했다.

1941년 1월 10일, 이 골칫거리는 캐나다로 보내졌다. “이번에는 대서양 건너보라고 ㅋㅋㅋㅋㅋ” 

1월 21일, 캐나다에 도착한 포로들과 폰 베라는 기차로 캐나다 국내의 수용소에 보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좌절할 폰 베라가 아니었다. 마침 기차가 속도를 늦출 때 그와 7명의 다른 포로들은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포로들은 금방 붙잡혔지만, 그 와중에 폰 베라는 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와 동료 포로들이 기차에서 내린 지점은 미국 국경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야음을 틈타 얼어붙은 세인트 로렌스 강을 건너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그는 마침내 국경을 넘어 미국의 뉴욕 주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미국 경찰에 자수했다.

어? 자수? 하시겠지만, 1941년 1월이면 아직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전이다. 미국은 중립국이었고, 미국 경찰은 폰 베라를 고민끝에 ‘불법입국’으로 수감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독일 영사관에서 잽싸게 사람을 보내 신원보증을 하고 보석금을 지불해 풀어줬다.

그 뒤 얼마간 폰 베라는 미국의 독일인 사회에서 그야말로 스타가 됐다.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수많은 독일 교민들이 베푸는 파티에 참가하는 등 신나는 나날을 보낸 그였지만, 곧 독일 대사관을 통해 자신이 캐나다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은 중립국이라지만 이미 ‘진짜 중립’은 아닌 쪽으로 기울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붙잡혀있지 않은데다 독일 대사관의 도움까지 받는 그는 곧바로 신분을 위장하고 멕시코 국경으로 향했다.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멕시코 노동자인 척 국경을 무사히 건너 멕시코로 들어간 그는 곧 독일 외교당국의 도움으로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결국 1941년 4월 18일에는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독일에 귀국한 그는 또 다시 대 스타가 됐다. 히틀러는 그에게 기사 철십자장을 수여했고, 주변의 환호 속에 성대한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리고 독소전쟁 개전 초기에 동부전선에 참전해서 13대의 적기를 격추, 총 21대의 격추 스코어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스타’신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41년 10월 25일에 연습 비행중 바다에 추락해버린 것이다. 기껏 북미 대륙을 탈출해 독일로 돌아간 유일한 독일군 포로라는 영광을 안았음에도 귀국 반년만에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아무래도 탈출하는 과정에서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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