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지뢰 탐지기 사용 시범중인 영국군.
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지뢰 탐지기 사용 시범중인 영국군.

2차 대전에서 폴란드 발명품의 또 다른 공헌은 바로 지뢰탐지기다. 우리가 아는 휴대용 지뢰탐지기, 즉 금속탐지기가 바로 폴란드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전, 폴란드군은 사격장이나 전장에 파묻힌 불발탄을 찾는 도구를 개발하려 했다. 이 임무를 맡은 것은 폴란드의 육군 중위 요셉 코사키 중위. 그는 자기장의 변화를 이용해 금속을 감지하는 장치를 구상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것이 완성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2차 대전이 벌어졌고, 폴란드는 곧바로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폴란드 망명정부와 함께 프랑스로 피신하는데 성공한 코사키 중위는 이 불발탄 탐지기의 용도를 지뢰 탐지기로 바꿔 개발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프랑스가 함락되면서 개발을 중단하고 영국으로 피신해야 했다.

휴대용 금속탐지기(지뢰탐지기)의 발명자 요셉 스타니슬라프 코사키 중위(1909~1990).
휴대용 금속탐지기(지뢰탐지기)의 발명자 요셉 스타니슬라프 코사키 중위(1909~1990).

 

간신히 영국에서 개발을 계속할 수 있게 된 코사키의 지뢰탐지기(금속탐지기) Mk.1은 1941년 하반기에 완성됐다. 코사키는 이 발명을 일부러 특허를 내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영국이 이 발명을 이용해 나치 독일을 쳐부수라는 것이었다. 

그가 만든 금속탐지기는 무게가 약 14kg정도로, 병사 한 명이 휴대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영국은 이 금속탐지기의 양산체제를 정비한 직후 약 500세트를 북아프리카로 보냈다. 1942년 가을에 벌어진 엘 알라메인 전투에 쓰기 위해서였다. 당시 독일의 아프리카 군단은 영국군이 공격하려 노리던 전선 지역에 막대한 양의 지뢰를 매설했고, 탐침봉으로 땅을 찔러가며 지뢰를 찾는 전통적 방법으로는 언제 지뢰밭을 개척할지 까마득했다. 그런데 때마침 금속탐지기가 등장했던 것이다.

금속탐지기는 영국군의 지뢰 제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장 지뢰제거 속도가 두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에 꽤 중요하게 공헌한 셈이다. 

물론 독일도 바보는 아니어서 이 금속탐지기의 존재를 깨닫기 무섭게 목함지뢰등의 대응책을 마련하지만, 그래도 가장 일반적인 지뢰는 금속제인 만큼 전쟁중 연합군의 지뢰탐지 효율을 크게 높인 것은 사실이다.

Mk.1 지뢰탐지기의 양산 현장. 2차 대전중 약 10만 세트가 생산되었다.
Mk.1 지뢰탐지기의 양산 현장. 2차 대전중 약 10만 세트가 생산되었다.

 

이 금속탐지기는 영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생산되었으며 약 10만세트가 전쟁중에 만들어져 연합군의 지뢰 탐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용된 이 탐지기들은 개량형이 계속 만들어졌고, 영국군에서는 무려 90년대까지 개량형(Mk.4c)이 사용되었다. 또 많은 지뢰탐지기들이 아직도 코사키 중위가 발명한 원리를 응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폴란드의 발명이 지금까지도 많은 목숨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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