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배포자료)
(강릉시 배포자료)

지난 14일, 강원도 강릉시 주변에서 장갑차 4대가 바다에 투하됐다.

강릉시 관계자는 이 장갑차 4대는 육군 종합군수학교에서 받은 퇴역차량으로, 인공어초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날 투하된 차량들이 모두 군사유물로 분류될 수 있는 희귀 차량들이라는 것.

위 사진에 나온 차량은 상륙장갑차인 LVT-4로, 2차 세계대전중 생산되어 2차 세계대전의 여러 전선뿐 아니라 6.25당시에도 인천상륙작전이나 한강 도하작전등에 사용된 차종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차량의 숫자가 많지 않고, 국내에도 우리 해병대가 비교적 대량으로 운용한 LVT-3계열(숫자는 먼저지만 실제로는 LVT-4보다 늦게 나옴)보다 숫자가 적기 때문에 어쩌면 국내 잔존 차량이 이것 한대뿐일지도 모르는 실정이었다.

해외 박물관에 전시중인 LVT-4 (Wikipedia)
해외 박물관에 전시중인 LVT-4 (Wikipedia)

영국에서도 최근 파묻혀 있던 동종 차량을 새로 발굴해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중인데, 그런 희소차량을 우리는 알아서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오랫동안 방치되어 가동도 안되는 차량이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궤도나 현수장치등의 주행계통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구조물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상태인 만큼 해외 복원 전문가들에게 매각하면 최소한 박물관 전시가 가능한 복원차량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가동차량으로 부활시킬 여지도 있었을 듯 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그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강릉시측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LVT-4뿐 아니라 이 날 해상투기된 차량 4대 모두 함부로 버려도 되는지 의문이 드는 군사유물급 차량들이기 때문이다.

강릉시 배포자료. 번호는 임의로 본지가 붙임.
강릉시 배포자료. 번호는 임의로 본지가 붙임.

강릉시측은 차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충 종류만 기재했지만, 해당 차종들은 한 종류를 제외하면 국내에 극소수만 존재하거나 아예 한 대만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차량들이다.

가)는 구 서독의 UR-416장갑차로, 1970년대에 차륜식 장갑차 도입사업을 추진할 때 비교평가용으로 극소수만 도입된 차량이다. 대량 도입이 안된 이 차량은 오랫동안 논산 훈련소등에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전시되던 것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나름 역사적 의의가 있는 희귀차량인 만큼 이렇게 함부로 투기해도 될지 의문이다.

나)는 KM900장갑차로 그 자체로는 그렇게 희귀하지 않으나, 육군 종합군수학교에서 보관중인 차량이었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이 아니라 비교평가용으로 수입된 이탈리아제 오리지널 CM6614, 혹은 KM900장갑차의 국내제작 1호 차량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도 전쟁기념관등에 별도 보관하는 편이 나은 나름대로의 군사유물이다.

다)는 미국제 M4트랙터로, 이것 역시 현존 차량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며 해당 차량의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전시차량및 개인수집 차량등 현존 차량 내역까지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국내에는 분명 이것 단 한대만 남아있을 듯 했는데, 이것 역시 해상투기로 사라졌다.

라)는 앞서 언급한 LVT-4.

이번 일은 군도 지자체도 군사유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강원도는 최근에도 그 동안 군에서 임대형식으로 받아서 전시하던 기어링급 구축함(전북함)의 노후화로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자 군에 반납 후 해체를 요청했는데, 지자체도 군도 여기에 대해 군사유물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노후 장갑차량의 인공어초화 자체는 다른 나라에서도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고, 오래된 군사 전시물의 해체가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할 경우는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 장갑차 해상투기는 충분히 역사적 중요성을 미리 검토해서 그에 맞는 조치(다른 노후 차량으로의 대체 등)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관들 모두 그에 대한 아무런 검토도 없이 거의 "쓰레기 버리듯" 바다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군사 유물이 사라지는 일이 얼마나 더 반복될까. 갑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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