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 점령지역 내에서 반 러시아 게릴라전이 심상찮은 수준으로 전개중이라는 미확인 보도가 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멜리토폴 인근에서 러시아군의 장갑열차가 게릴라들이 설치한 폭발물에 의해 장갑 열차가 탈선,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정보도 유포중이며 이 외에도 다양한 게릴라전 이야기가 돌고 있다.
러시아군 점령지 내에 게릴라전이 진행되는 그 자체는 사실로 여겨지고 있는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얼마나 효과적일 것이며 얼마나 지속이 가능할지의 여부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인들에 대해 게릴라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절대 아니다. 이미 1944년부터 1956년까지, 10여년에 걸쳐 소련군에 대한 치열한 게릴라전을 벌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반소/반공 게릴라들은 우크라이나 저항군(UPA)을 결성했는데, 적게 잡아도 2만명, 많게 잡으면 20만명의 조직원으로 구성된 이들은 1940년대 말엽에는 소련군에게 상당한 희생을 강요했다- 당시 소련군의 사상률은 후대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다만 UPA에게는 심각한 한계가 있었다. 외부의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국경을 접한 모든 나라가 전부 소련 점령지였기 때문에 설령 서방측에서 뭔가 도와주고 싶어도 물자와 사람을 보내기가 지극히 어려운 실정이었던 것. 그래도 미국의 CIA나 MI6가 물자지원을 안 한것은 아니지만, 항공기를 이용해 몰래 전달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는데다 MI6내에서 관련 기밀이 속속 소련으로 새 나가던 때라 -악명높은 킴 필비가 MI6에서 한창 소련을 위해 일하던 그 때다- 원조의 효과가 날 턱이 없었다. 그 얼마 안되는 원조 물자도 도착하는 족족 소련군에게 압수당했다.
게다가 당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탈린이 소련을 지배하던 시절이다. 소련군은 그야말로 UPA가 보이는 족족 처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대 15만명이 사살 혹은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 여기에 독일군의 침략을 겪은지 얼마 안되다 보니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영웅으로 보는 여론 못잖게 나치의 잔당 취급하며 반감을 가지는 여론 역시 강했다- UPA구성원 중 상당수가 2차 대전중 나치 독일에 부역한 인원들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결국 1956년 무렵이면 UPA는 사실상 소멸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2022년에는 어떨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외부 원조의 가능성이다. 과거와 달리 바로 옆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있고, 이들은 아마 지금도 특수부대등을 동원해 게릴라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지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의 뒤에는 미국과 NATO가 전폭적인 원조를 하고 있다. 대외 지원이라는 면에서는 과거보다 압도적으로 조건이 좋은 셈이다.
여기에 현지 여론도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 UPA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도 이번 전쟁으로 반러 여론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적어도 현재 진행중인 반러 게릴라전에 대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선전을 믿고 나치라며 반감을 가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러시아군의 규모도 구 소련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현재 러시아 전투병력의 대다수는 돈바스 일대에서의 공세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지역도 우크라이나군의 역습 때문에 점령지대 외곽에 병력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총 병력 자체가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만이 안되는 러시아군 중 그나마 대다수가 점령지 내부 치안에 종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작은 나라면 모르겠는데, 지금 러시아 점령지의 면적은 남한 땅보다 넓지 않을까 싶은 판이다.
다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 점령지의 대부분은 산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평야지대나 해안지대이고 정글같은 것도 없다. 즉 게릴라전에 유리한 ‘자연적 은신처’가 매우 희귀하다. 여기에 전쟁이 계속 진행되는 만큼 우크라이나 영토와 점령지 사이를 왕래하는데도 위험부담이 크다. 즉 우크라이나 본국으로부터의 물자나 인력 지원을 받는데 리스크가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게릴라전이 격화될수록 러시아 점령군이 현지 주민들에 대해 각종 학살등의 잔학행위를 벌여 피해가 급증할 리스크도 커질 것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점령지에 대한 게릴라전이 어떻게 전개될지 쉽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격화될 가능성은 높으며, 러시아군이 아무리 잔인하게 탄압하려 해도 스탈린 시절만큼의 자원(특히 인력)을 여기에 투입하기가 힘든 여건이다. 또 70여년 전과 달리 외부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것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점령지를 유지하는데 치뤄야 할 댓가도 갈수록 비싸질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