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미란테 그라우로 개명된 뒤의 드 루이터. 위키피디아.
알미란테 그라우로 개명된 뒤의 드 루이터. 위키피디아.
1962년 촬영된 드 루이터. 위키피디아.
1962년 촬영된 드 루이터. 위키피디아.

최근 페루 해군의 순양함 한 척이 폐선 처분되기 위해 이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퇴역한 해군함정이 폐선되어 해체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이 배에 유달리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이유가 있다. 이 배가 세계 최후의 함포를 주무장으로 만들어진 순양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수된 것이 1944년, 현역으로 취역한게 1953년. 최종적으로 퇴역한게 2017년. 무려 64년을 현역으로 활약한 역사적인 배다.

이 배의 시작은 1939년 9월 5일에 건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원래는 네덜란드 해군의 순양함 드 루이터(De Ruyter). 만재 12,165t에 6인치 함포 8문으로 무장한 배로, 2척이 계획된 드 제벤 프로빈시엔급 순양함의 2번함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 5월에 네덜란드가 독일에 점령되면서 독일 해군은 이 배를 쓰기 위해 건조를 계속했지만, 공사는 계속 지연됐다. 독일도 전쟁통에 함정 건조에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없는데다 조선서 노동자들도 최대한 일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1944년 12월에 간신히 진수는 했지만 완성되지 못한 채 전쟁이 끝났고, 전쟁이 끝난 뒤 네덜란드 정부는 이 배와 동급함을 어떻게든 완성해 1953년에 취역시켰다.

네덜란드는 이 배를 19년간 운용하다 퇴역시켰고, 퇴역한 이 배는 동급함 드 제벤 프로빈시엔과 함께 페루 해군에 넘겨져 퇴역 바로 다음해인 1973년부터 페루 해군 순양함 “알미란테 그라우”로 재취역했다.

그리고 이 배는 페루 해군에서 오래… 오래… 또 오래… 아주 오래… 오오오오오오래 운용된다.

페루 해군에서 이 배는 성능을 뛰어넘는 상징적인 배였다. 사실 현대화를 했다고 해도 대공미사일도 없고 미사일이라고는 대함미사일 8발에 주 무장이던 6인치 함포는 그닥 큰 의미를 부여할 무장도 아니게 됐지만, 어쨌든 ‘간지’하나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수준 아닌가! 덕분에 이 배는 기함 자리를 이어갔다.

동급함인 아귀레(드 제벤 프로빈시엔)은 1999년에 퇴역했지만, 알미란테 그라우는 계속 버티고 버텨 2017년까지 버텼다. 진수 후 73년, 페루 해군에서만도 44년을 버틴 셈이다. 무려 2017년에 함포를 주 무장으로 하는 1만톤짜리 순양함이라니. 그 시점에서 중남미 다 합쳐 최대급의 전투함임에 틀림없었다.

페루에서는 2019년에 이 배를 박물관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했으나, 하필 다음해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그 뒤를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경제난이 닥치면서 도저히 이 배를 보존할 수 없게 됐다. 결국 폐선이 결정됐고, 이제 곧 해체될 운명에 놓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참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2022년 7월, 폐기처분되기 위해 이동할 준비를 마친 알미란테 그라우.
2022년 7월, 폐기처분되기 위해 이동할 준비를 마친 알미란테 그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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