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차박물관에 있는 M51 슈퍼 셔먼. 셔먼 전차에 미국제 컨티넨탈 디젤엔진을 장착했고 프랑스제 105mm 주포를 탑재했다. 현수장치는 모두 HVSS로 교체. (위키피디아)
이스라엘 전차박물관에 있는 M51 슈퍼 셔먼. 셔먼 전차에 미국제 컨티넨탈 디젤엔진을 장착했고 프랑스제 105mm 주포를 탑재했다. 현수장치는 모두 HVSS로 교체. (위키피디아)

최근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이 독립전쟁 당시 전차가 부족해서 이탈리아에서 고철 셔먼을 사들인 다음, 거기에 포가 없어 독일에서 유대인 학살 보상으로 받은 구형 크룹 75mm 야포를 장착해 실전에 투입했다. 독립전쟁이 끝나고 나니 전차가 15대 밖에 없었는데,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니 미국은 중동 국가들 눈치를 보느라 셔먼 전차를 지원하지 못했는데 한국이 마침 전차를 신형으로 바꾼다며 보유중이던 셔먼 전차 약 400대를 이스라엘에 수출했다.”

 

이 글은 누가 먼저 썼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팩트라도 잘못 섞어놓으면 어긋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 독립전쟁 시기에 이스라엘이 이탈리아에서 고철 셔먼을 사들인 것은 맞다.

 

2. 문제는 독일제 크룹 구형 야포를 셔먼에 장착한게 ‘독일이 유대인 학살의 보상으로 지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 크룹 75mm 야포의 포신은 독일이 아닌 다른 유럽국가(소스에 따라서는 스위스라고도 함)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 시점은 1948년. 아직 동서독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이며 독일은 연합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3.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에 셔먼을 수출한 것 자체는 정황상 맞는 듯 하다. 우리나라가 셔먼을 다수 퇴역시킬 무렵에 이스라엘이 세계 각지에서 퇴역 셔먼을 상당수 사들인 것은 맞기 때문이고, 셔먼은 우리나라에서 전시를 위한 비축차량으로 남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즉 셔먼들이 퇴역하고 나서 얼마 안가 사라진 셈인데, 그러면 그걸 '업어간' 것은 이스라엘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 자체는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다.

문제는 그 시점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독립전쟁 직후라 셔먼이 15대밖에 없던’ 때가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군 주력전차가 셔먼이 아니던 1960년대 끝무렵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독립전쟁 직후면 우리나라에서는 6.25가 진행중이던 1950년대 초반인데, 그 시절이면 우리는 전차를 퇴역시키기는 커녕 셔먼 전차를 보유하지도 못하고 있었다(셔먼을 우리 군이 보유하기 시작하는건 1950년대 중반부터다. 저 글 대로면 우리는 수백대의 셔먼을 보유하기도 전에 퇴역시킨 다음 수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미 이스라엘군은 1967년 6일 전쟁 시점에서 800대 이상의 전차를 보유중이었고 그 중 대부분은 미국제 M48계열과 영국제 센츄리온 계열이었다. ‘셔먼 15대 밖에 전차가 없는’ 것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랐다.

 

4. 1960년대 후반에 이스라엘이 셔먼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하던 것은 ‘전차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부품이 부족해서’였다. 이스라엘군은 1950~60년대 사이에 다수의 셔먼을 프랑스제 주포로 개조한 M50및 M51로 개조했는데, 비록 1960년대 끝무렵에는 이미 구식 취급을 받았으나 그래도 이스라엘군에서 꾸준히 유지가 됐다(1973년의 4차 중동전 당시에도 다수가 현역으로 참전).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생산 중단된지 20여년이 넘은 구형인지라 부속 수급이 쉽지 않았고, 그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퇴역 셔먼을 예비 부품으로 쓰기 위해 사들인 것이다.

특히 우리가 쓰던 M4A3E8형에 장착된 HVSS형 현수장치는 그보다 이전 버전인 VVSS형 현수장치에 비해 생산량이 많지 않아 부품 수급이 상대적으로 어려웠을테고, 그런 와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M4A3E8형을 수백대 구입할 수 있게 되자 이스라엘이 금방 나꿔채지 않았을까?

 

5. 간단하게 말해,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의 혼동으로 인해 ‘팩트인데 팩트가 아닌’ 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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