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운용하던 멜보른. 1955~1982. 원래 영국의 머제스틱급 항모중 한 척(머제스틱)이다. (Wikipedia)
호주가 운용하던 멜보른. 1955~1982. 원래 영국의 머제스틱급 항모중 한 척(머제스틱)이다. (Wikipedia)

 

해군의 항모 건조계획이 진행중인 가운데, 항모의 높은 비용을 ‘수출로 메꾸자’면서 ‘한국형 항모는 수출시장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적당한 가격의 통상 추진형 항모라면 여러 나라가 갖고 싶어하며, 도시국가 싱가포르와 동남아 강국, 중남미의 대영토 국가들이 한국형 항모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발언이 아덱스 2021에 참가한 유럽 방산업체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주장까지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항모가 ‘적당한 가격이면 여러 나라가 살’ 함정일까.

사실 항모 값이 싸서 여러 나라가 보유하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1950~70년대 사이에는 인도, 브라질, 캐나다, 네덜란드, 스페인, 호주, 프랑스, 아르헨티나등의 나라들이 잠시라도 항모를 보유한 바 있다. 가히 항모 보유국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던 때다. 이 시기는 값싼 항모 매물이 많았고, 값싼 함재기도 많았던 것이 항모 보유국의 폭증을 불러왔다.

이것만 보면 싼 함재기와 항모만 있으면 항모 수출은 얼마든지 될 것 같다. 하지만 1950~70년대 사이의 항모 매물은 그냥 싼게 아니다. ‘아주’ 쌌다. 제 값 받고 팔려고 일부러 만든 배들이 아니라 기껏 만들었더니 건조국에서 필요없다고 판단해 방출한 중고 매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항모를 구입한 나라들의 매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국이 2차 대전중 건조한 경항모인 콜로서스급(10척) 및 머제스틱급(6척)의 중고 매물이다. 이 배 16척 중 12척이 해외 해군에 중고 매물로 팔려나갔다. 2차 대전중에 건조가 시작됐으나 대전 말기 혹은 직후에 완성되면서 쓸모가 크게 줄었고, 영국 해군의 감축까지 더해지면서 대부분이 별로 운용되지 않은 상태의 값싼 중고매물이 된 것이다. 영국 해군으로서는 유지비 절약을 위해서라도 빨리 방출해야 했으니 ‘본전’을 감안한 넉넉한 가격을 부를 수 없었고 말이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 중 스페인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이 급의 배들을 운용했고,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이 보유한 항모 비엔티싱코 데 마요도 바로 콜로서스급 경항모였다.

아르헨티나의 비엔티셍코 데 마요. 원래는 영국 콜로서스급의 4번함 비너러블로, 1966~1999년 운용. (Wikipedia)
아르헨티나의 비엔티셍코 데 마요. 원래는 영국 콜로서스급의 4번함 비너러블로, 1966~1999년 운용. (Wikipedia)

 

또 하나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중 건조한 인디펜던스급 경항모다. 100척 넘게 건조된 호위항모에 비하면 초라한(?) 9척의 숫자이지만 호위항모에 비하면 그래도 약간 더 큰데다, 이것도 미 해군에서 그다지 중시하지 않은 함종이다 보니 한 척은 프랑스(프랑스 해군 명칭 라파예트)에, 또 한 척은 스페인(스페인 해군 명칭 데달로)에 무상원조, 혹은 염가 판매가 이뤄졌다.

이처럼 아주 값 싼 매물이 있던 시절에는 많은 나라들이 항모에 손을 댔다. 하지만 정말 싼게 아니면 항모에서 손을 뗀다는 사실은 콜로서스/머제스틱급과 인디펜던스급이 노후화등으로 퇴역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항모 보유국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잘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 중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아르헨티나는 보유한 콜로서스/머제스틱급이 퇴역하자 대체 항모를 마련하지 않았다. 국가정책상 항모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프랑스와 스페인은 자국에서 대체 항모를 건조했다.

여기에 1950~70년대 사이에는 함재기도 지금보다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었다. 아예 2차 대전때 쓰이던 중고 프로펠러 함재기를 도입해 운용한 경우도 있었고, 제트기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현대의 기준보다 많이 저렴한 아음속 기체들로도 충분히 함재기로 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함재기 조달에도 그렇게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네덜란드 해군의 카를 도어만. 1948~1968년 운용. 원래는 앞서 언급한 영국의 콜로서스급 항모 비너러블. 이 배를 아르헨티나 해군이 넘겨받은게 비엔티싱코 데 마요다. (Wikipedia)
네덜란드 해군의 카를 도어만. 1948~1968년 운용. 원래는 앞서 언급한 영국의 콜로서스급 항모 비너러블. 이 배를 아르헨티나 해군이 넘겨받은게 비엔티싱코 데 마요다. (Wikipedia)

 

이처럼 현실적으로 아주 값싼 중고 항모와 함재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새 항모가 좀 싸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손을 대는 나라가 늘어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태국이 스페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경항모를 제안해 손을 대기는 했으나, 그렇게 마련한 차크리 나루에벳은 태국 해군의 자랑이기 보다는 조롱거리에 가까운 신세로 전락한 판이다.

아무리 우리가 항모를 저렴하게 만든다 해도 현대의 신규 항모는 경항모라도 척당 조 단위를 오가는 고가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의 해양 위협을 감안하면 배 자체만 사야 하는게 아니라 함재기도 값비싼 초음속 기체로 추가로 구매해야 하며 호위함정들도 항모전단 구성에 걸맞게 원양작전 능력과 대잠-방공능력이 충분한 배들로 갖춰야 한다. 항모 외에도 몇조 단위로 추가 투자가 필요한 곳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그저 ‘배 값이 조금 싸다’는 이유만으로는 한국형 항모를 쉽게 구입할 나라가 많기 힘들다. 정말 그 나라의 국가전략/해양전략/경제력 등 다양한 측면을 아주 고심해서 꼭 사겠다는 나라가 있으면 모를까, 현 시점에서 항모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약간 싼 정도의 가격만 보고 갑자기 항모 보유 필요성을 깨달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50년대 영국의 콜로서스/머제스틱급처럼 10여척의 항모를 만들어놓고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원가에도 한참 못미치는 헐값으로 출혈 대방출할 작정이면 모를까,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수출을 쉽게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물론 항모를 만든다 치면 수출에도 노력은 해야겠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게 마치 쉽게 될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옳은 홍보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스페인 해군의 경항모 데달로. 1967~1989운용. 원래는 1943년 미국이 진수한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캐봇이다. (wikipedia)
스페인 해군의 경항모 데달로. 1967~1989운용. 원래는 1943년 미국이 진수한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캐봇이다.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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