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속탄(클러스터탄)의 공급을 정식으로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집속탄 공급은 자제해왔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모두 집속탄 금지조약에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미국은 집속탄을 꾸준히 없애는 추세였고 미국의 우방국들 중에도 다수가 집속탄 금지조약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속탄이 가지는 인도주의적 문제(다수의 불발탄 발생으로 전쟁 뒤에도 피해가 지속되는)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측은 꾸준히 집속탄 공급을 요청해왔다.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광범위한 전선에서 대규모 정규군이 충돌하는 양상이고, 그야말로 집속탄이 개발된 냉전시대에 상정된 전장 양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병의 숫자에서 아무래도 러시아에게 뒤쳐지는 우크라이나로서는 사용하는 탄약의 숫자에 비해 훨씬 넓은 면적으로 커버할 수 있는 집속탄을 원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집속탄은 다수의 작은 폭탄을 포탄이나 로켓탄 안에 넣고 표적 상공에서 살포해 광범위한 면적을 커버하기 위한 것이다. 

155mm 포탄의 경우 미국이 개발한 DPICM(M483A1이나 M864)의 경우 최소 24발/최대 64발의 자탄을 살포할 수 있고, MLRS용의 M26 로켓은 무려 644발의 자탄을 살포할 수 있다. 흔히 MLRS의 로켓 공격을 '강철비'(Steel Rain)라고 표현하는데, 단 12발밖에 쏘지 못하는 M270 MLRS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도 12발의 로켓으로 무려 7,728발의 자탄을 살포하는 능력 때문이다.

이 자탄들은 단순한 작은 폭탄이 아니다. 성형작약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대인용으로도 효과가 있지만 장갑차량이나 전차의 상부에 떨어지면 얇은 상부 장갑을 관통, 내부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즉 넓게 펼쳐진 적 기갑부대에 대한 저지용으로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측으로서는 명분이 없지도 않다. 이미 러시아군이 여러 종류의 집속탄을 전쟁 초기부터 적잖이 사용해왔고 현재도 꾸준히 사용중인 것으로 보고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에서 미국이 집속탄을 지원하면 러시아도 따라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러시아측에서 딱히 제약없이 쓰고 있는 중임을 생각하면 최소한 상황이 더 악화될 여지는 없어보인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자신도 이미 집속탄을 수개월 전부터 사용하고 있다. 터키제 집속탄(155mm용)이 전선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집속탄 금지조약에서 금지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해도, SMART등의 지능형 집속탄도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탄약 지원을 늘리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처럼 집속탄이 아닌 통상탄약만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우크라이나군이 요구하는 수량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미군 자신이 사용할 전시 재고까지 소모하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집속탄은 미군이 여전히 다수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어차피 사용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폐기가 진행되던 중이라 지원에 부담이 없고, 또 여전히 가장 중요성이 높은 통상형 탄약의 지원 수량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 전 당시 미군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일반 155mm 고폭탄은 적 1명을 사살하는데 평균 13.6발을 소모했으나 155mm 집속탄으로는 1.7발을 소모하는데 그쳤다. 물론 우크라이나에서도 이런 비율이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미국이 지원해야 할 탄약의 수량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직 어떤 종류의 집속탄이 지원될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우크라이나는 155mm용 DPICM(2중목적 고폭탄)들과 M26등의 MLRS용 로켓 지원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으며 미국이 지원을 결정하면 가장 먼저 이것들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항공기용 집속탄의 지원도 원하고 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공군이 사용한다기 보다는 집속탄에서 자탄을 추출한 뒤 그것을 드론에서 투하하는 폭탄으로 사용하려 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