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4
T-14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제 1년하고도 4개월을 넘었다. 

그 동안 온갖 러시아군 장비가 전선에 출몰하고 파괴되었지만, 단 한 종류는 아직도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바로 T-14 알맞다... 아니 아르마타 전차이다.

러시아가 2022년까지 대략 8년간 세계 최고의 전차라며 주요 행사에 공개하고 온갖 '언플'을 아끼지 않은 바로 그 전차 말이다.

심지어 친러시아 매체들도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이것만 나오면 게임체인저"라고 외쳐댔지만, 거의 모든 종류의 러시아 전차가 전선에 출몰한 현 시점에 이것만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 T-54/55도 등장했는데 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해서, 무기라는게 성능 하나만으로 실전에서의 가치가 증명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T-14의 가치는 60년 이상 센빠이 '선배'인 T-55보다 떨어진다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다.

T-55
T-55

T-55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T-14와 비교하면 방어력, 화력, 기동력, 상황인식능력 등 사실상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장에서의 가치도 T-14보다 압도적으로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T-55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선에 출몰하고 있으나 T-14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무기라는게 성능만으로 가치가 결정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성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말이다.

T-14는 성능은 어떨지 몰라도 전장에서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차량이 아니다. 수량 자체도 10여대에 불과하지만, 숫자 그 자체보다 문제는 부품및 정비등의 지원체계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무기로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T-14가 만약 기존 러시아 전차들과 많은 부품, 특히 주행계통 부품을 공유한다면 설령 숫자가 적어도 야전에 투입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엔진, 변속기, 현수장치 등 야전에서의 유지보수에 가장 중요한 주행계통 부품들 중 기존 러시아 전차들과 공유되는건 사실상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부품이나 구성품들이 넉넉하게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십여대밖에 안되는 차량들을 위해 부품 양산체제가 수립될 턱이 없으니 말이다.

반면 T-54/55와 T-62는 '전선에서의 지속성' 혹은 '생태계'라는 측면에서는 차라리 T-14보다 훨씬 낫다.

구식 전차라고는 하지만, T-54/55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차량이라는 점, 그리고 T-34이후의 소련과 러시아 전차 대부분이 같은 엔진(V-2계열 디젤엔진)의 개량형이라는 이유 덕분에 지금까지도 엔진, 변속기, 현수장치등의 주요 부품들을 그럭저럭 구할 수 있다. T-62역시 2만대 이상이 생산된데다 T-54/55계열과 엔진/변속기를 포함해 많은 부품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나 전선에서 어떻게든 굴리려면 굴릴 수 있다. 즉 '무기로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태계'가 최소한 T-14보다는 낫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T-54/55와 T-62는 보고 있지만 훨씬 나중에 나오고 훨씬 성능도 좋다는 T-14는 여전히 단 한대도 목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무기가 단순히 성능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라 종합적인 '생태계'를 갖춘 다음에야 실제로 전쟁에 쓸 수 있는 무기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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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4 #T-54/55 #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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