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카이오 뒬리오 구축함.
이탈리아의 카이오 뒬리오 구축함.

지난 3월 초, 이탈리아 해군의 프리깃 ‘카이오 뒬리오’(Caio Duilio)가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드론 1대를 격추시켰다. 이탈리아 해군은 EU가 주관해 예멘의 후티 반군이 가하는 대함미사일/드론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호위선단 작전인 ‘아스피데(Aspides) 작전’에 참가한 상태로, 카이오 뒬리오는 이탈리아 전단 3척의 기함이자 작전 전체의 기함으로 활약중이다. 

현재 아스피데 작전에는 카이오 뒬리오를 포함해 이탈리아측 구축함/프리깃 3척, 독일측 프리깃 1척, 벨기에 프리깃 1척, 그리스 프리깃 1척, 프랑스 프리깃 2척, 네덜란드 프리깃 1척 등 총 9척의 함정이 참가중으로, 카이오 뒬리오는 참가 함정들 중에서 가장 방공능력이 높은 배중 하나로 꼽히는 호라이즌급 방공구축함(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 개발. 참고로 이탈리아측 함급 명칭은 오리존테 Orizzonte)인 만큼 속도가 빠르지도 않은 자폭 드론을 잡았다는건 신기할 일도 아니다. 격추한 거리가 6km라는데, 이것도 전혀 신기할 일 아니다. 사실 왜 이리 가까이까지 접근하도록 기다렸나 싶은데…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격추에 사용한 무기다. 바로 76mm 함포다. 잠깐. 함포? 그것도 76mm?

오토멜라라 76mm 슈퍼래피드. 노르웨이 해군이 사용중인 모습.
오토멜라라 76mm 슈퍼래피드. 노르웨이 해군이 사용중인 모습.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인가 싶지만, 사실 NATO에서 사실상 표준 함포중 하나처럼 사용하는 이탈리아의 오토멜라라 76mm 함포들은 어느 정도의 대공능력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포다. 발사속도만 봐도 가장 기본형(이자 우리 해군도 사용하는)인 컴팩트형이 분당 약 85발, 발사속도를 높인 슈퍼 래피드형은 분당 120발에 달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해군은 과장 안하고 말해서 ‘76mm 성애자’다. 다시 한번 말한다. 과장해서가 아니라 과장 안하고 ‘76mm 성애자’다. 너무 심한 표현 아니냐고? 저기요. 당장 카이오 뒬리오만 해도 76mm 함포를 무려 세 문이나 달고 있다고! 요즘 함포를 한 문만 달고 다니는 함정이 한둘이 아니고 많아야 2문(프랑스의 호라이즌 급 2척이 76mm 슈퍼래피드 2문을 장착)인 이 시대에 세 문은 분명 이례적인 숫자다.

하지만 이 정도로 ‘76mm 성애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이탈리아 해군은 정말 76mm 함포를 달 수 있는 배라면 어디에라도 달 기세다. 어느 정도냐고? 현재 취역을 앞둔 차기 항모겸 상륙함 ‘트리에스테’가 무려 3문의 76mm 함포를 장착하고 있으며, 1990년대에 건조된 ‘라 펜네’급 방공구축함 역시 1문의 127mm 함포 외에 3문의 76mm 함포를 장착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배들이 76mm를 최소 하나라도 탑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가장 최근에 건조된 이탈리아 해군의 함정중 하나인 타온 디 레벨급 원양초계함(사실상 프리깃)도 127mm 함포 1문과 76mm 함포 1문을 함께 탑재하고 있다.

2024년에 취역할 예정인(1944년이나 54년 아니고!!!!!) 강습상륙함 겸 항모 트리에스테. 76mm포를 셋이나 달고 있다(...)
2024년에 취역할 예정인(1944년이나 54년 아니고!!!!!) 강습상륙함 겸 항모 트리에스테. 76mm포를 셋이나 달고 있다(...)
라 펜네급 방공구축함. 함수에 127mm함포 1문, 좌우 측면에 76mm 함포(...) 2문, 후방에 76mm 함포 1문을 탑재했다. 구축함 한 척에 76mm 포 3문 단 배를 1990년대에 건조했다(...) 이러고도 76mm 성애자가 아니냐 이탈리아 해군!
라 펜네급 방공구축함. 함수에 127mm함포 1문, 좌우 측면에 76mm 함포(...) 2문, 후방에 76mm 함포 1문을 탑재했다. 구축함 한 척에 76mm 포 3문 단 배를 1990년대에 건조했다(...) 이러고도 76mm 성애자가 아니냐 이탈리아 해군!

 

무려 최신 항모에조차 76mm 함포를 3문이나 탑재한 것은(신기한 것은 1980년대에 건조된 경항모 주세페 가리발디에는 없다는 것. 오히려 2000년대에 취역한 카보우르나 아직 취역도 안한 트리에스테가 달고 있으니…) ‘76mm 성애자’라는 표현을 부끄럽지 않게 해 주는 모습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왜 이렇게 ‘76mm 성애자’가 되었을까.

일단 이탈리아 회사가 만드는 함포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겠지만(일종의 정경유착?), 이탈리아 해군 자신이 76mm 함포 -특히 발사속도가 빠른 슈퍼 래피드- 의 방공능력에 상당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76mm포 정도 되면 진짜 쓸만한 근접신관(말 그대로 목표 주변에 도달하면 기폭되는)과 커플링해서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고, 사통만 받쳐주면 포 치고는 빠른 발사속도 및 근접신관, 그리고 127mm를 빼면 거의 넘사벽급으로 나오는 파편-폭풍에 의한 파괴반경등을 통해 예상보다 대공능력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해군은 CIWS개념이 확립된 80년대 이후 건조 함정들에서도 한동안 76mm 함포를 CIWS비슷하게 운용했고, 90년대 이후에는 40mm 기관포를 바탕으로 하는 CIWS를 개발하다 결국 취소한 뒤 76mm 슈퍼 래피드 함포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CIWS시스템을 도입해 카이오 뒬리오등 다양한 신형 함정들에 탑재하고 있다- 옙. 잘못 들으신거 아닙니다. CIWS예요. 그냥 함포도 아니고 CIWS. 그러니까 이탈리아는 76mm함포를 골키퍼(…)나 팰랑스(…)하고 같은 ‘끕’으로 놓고 쓴다는 이야기다. 이걸 보고도 76mm 성애자 소리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시는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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