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머 HVM이 란셋에 피격되는 장면. 러시아가 다른 정찰드론으로 촬영, 인터넷에 배포중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자폭무인기는 양측 모두가 적극적으로 활용중인 무기다.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러시아 역시 란셋 자폭무인기를 적극적으로 활용중이고, 여기에 피격되어 파괴되는 우크라이나 장비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아예 이런 것들로부터 지상군을 지켜야 할 방공자산들까지 란셋에 피격되는 사례가 거듭되고 있다.
위 동영상은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HVM스토머 자주대공미사일이 란셋에 피격되는 영상이다. 사실 이것은 1개월쯤 전의 영상으로, 며칠 전에도 또 한대의 스토머가 란셋에 피격되는 영상이 SNS상에 공개된바 있다.
어쨌든 이 두 건의 영상은 자폭무인기 시대의 단거리 방공이 꽤 골치아파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스토머는 이론적으로 이런 자폭무인기로부터 지상군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미사일만으로 무장한 이런 체계는 란셋같은 자폭무인기로부터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란셋등의 자폭무인기는 매우 작고 탐지가 힘들다. 즉 접근을 인지한 단계부터 요격 사이의 시간이 매우 짧다. 대개의 경우 레이더보다는 육안으로 탐지되고, 육안으로 탐지된 시점이면 실제 타격 직전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탐지부터 실제 요격 사이에 제법 시간과 절차가 필요한 미사일 입장에서는 낭패를 보기 좋은 상황이다. 여기에 미사일은 한 대의 차량에 탑재된 즉시 사용 가능 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스토머는 8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요격 역량을 소진할수도 있다는 문제도 있다. 설령 예비탄이 있어도 차를 멈추고 재장전을 하는 동안은 무력해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운용중인 게파르트 자주대공포조차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사일과 달리 탐지 후 요격 사이의 타이밍은 짧지만, 레이더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체계이다 보니 이것조차 란셋에 피격된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란셋은 RCS자체가 매우 작고 운용고도가 낮다 보니 항공기 상대를 위해 만들어진 게파르트의 레이더와 FCS로는 한계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게파르트같은 복잡한 체계쯤 되면 레이더나 기관포등의 체계들을 주기적으로 끌 일이 많다 보니 그런 상황에서 공격당하면 속수무책이다(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차량도 레이더를 접은걸 보면 가동중이 아닌 상황).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게파르트의 경우 원래 차체가 전차 베이스이고 상부 포탑 부분도 파편 방어등을 위해 꽤 맷집이 있게 만든 편이기 때문에 란셋 정도로 차량의 완전손실에 이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래 동영상에 피격된 차량도 수리가 가능한 수준의 피해로 끝났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란셋에 피격된 게파르트. 파괴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솔루션중 하나로 나온 것이... 바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취급받을 것이 오늘날 이런 자폭드론에 대한 최종방어수단으로 재등장하는 것이다.
사진은 체코에서 만들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는 빅터 MR-2 자주대공 차량이다. 이미 본지에도 소개된 바 있는 차량으로, 어떻게 보면 아주 흔한 '테크니컬'의 유럽 버전이라고 해도 좋은 수준이다.
애당초 베이스가 된 차량 자체가 테크니컬의 대명사라 할 도요타 랜드크루저 시리즈 70계열 픽업트럭이다. 중동 지역에서 테크니컬로 가장 흔하게 선택되는 차량이 유럽 전선에서도 유감없이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탑재된 무장도 KPV 14.5mm 기관총(2정)이다. 역시나 중동이나 아프리카등의 테크니컬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무장이다.
하지만 이 조합은 꽤 현실적이기도 하다. 우선 14.5mm 중기관총은 거의 20mm 기관포에 근접하는 유효사거리를 가지고 있고, 맞기만 하면 쉽게 란셋 정도의 표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발사속도도 1문당 600발/분 이므로 1,200발/분, 즉 1초에 20발을 사격할 수 있다. 북한도 이런 능력을 알고 있기에 대량으로 이 총을 만들어 '고사총'이라는 이름으로 각지에 배치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의 KPV를 이용한 방공체계들(ZPU-2나 ZPU-4등)은 수동으로 조작하는 방식이라 드론 위협에 어떻게 해 보기는 무리다. 작고 민첩한 드론 상대로 사람이 손으로 핸들을 돌려 움직이는 기존 ZPU체계들은 확실히 느리고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
빅터 MR-2의 경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식 제어장치를 갖춘 동력화된 포가를 도입했다. 자동추적같은 첨단기술은 아니지만 눈으로 발견한 자폭 드론을 향해 민첩하게 움직여 탄막을 퍼붓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기관총이라는 단순한 체계는 그야말로 표적 방향으로 지향해서 쏘기만 하면 되므로 순발력만큼은 더 복잡한 미사일이나 고성능 대공포 체계보다 낫다. 야간에 쓰기 어렵다는 문제나 목측에 의존하므로 대응거리가 짧다는 문제도 주야간 조준장치를 새로 달아서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장점은 이것 자체가 타겟이 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찰 드론을 통한 표적 탐색에서 우선순위로 잡히는 것은 전차나 자주포, 장갑차량등의 고가치 표적이다.
MR-2의 베이스가 되는 픽업트럭류는 위장 자체가 상대적으로 쉽고, 설령 발각되어도 한눈에 차량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워낙 전장에 흔한 차량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적의 표적 선정 과정에서 우선순위에서 누락될 확률이 제법 있다.
하여간 이제는 자폭드론의 위협으로부터 첨단 방공자산이나 자주포등이 낮은 수준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방공자산, 아니 돌직구로 말하자면 테크니컬의 보호를 받아야 할 상황일수도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군은 소형 트럭에 PKM등의 기관총을 묶은, 더 낮은 수준의 대 드론 테크니컬을 만들어 실전에서 운용하는 상황이다. 최첨단 드론을 상대하기 위해 20세기 후반에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평가되는 것들이 되살아나는 아이러니가 오늘의 현실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