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펜스 바로 앞에서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것으로 추산된 메르카바 Mk.4M. 이번 사태의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포구 커버가 그대로 씌워져 있는 부분에 주목.
경계선 펜스 바로 앞에서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것으로 추산된 메르카바 Mk.4M. 이번 사태의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포구 커버가 그대로 씌워져 있는 부분에 주목.

이스라엘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무장조직 하마스가 주도하는 대형 공격이 감행됐다. 역대 최대급의 공격으로, 단 수시간 사이에 최소 2,500발/최대 5,000발의 로켓 공격이 퍼부어졌으며 예전과 달리 접경지대의 이스라엘 군 전진기지 한 곳이 완전히 장악됐고 이스라엘군은 메르카바 주력전차 및 장갑차 여러대 -메르카바 최소 4대, 각종 장갑차 최소 17대가 노획 혹은 파괴된 것이 확인- 를 상실했으며 험비등의 각종 차량도 탈취당했다. 게다가 하마스의 병력이 접경지대의 이스라엘 도시 일부에까지 침투, 현지 경찰은 물론 민간인들에게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무엇보다 인명피해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피해는 심각하다. 10월 8일(한국시간) 오전까지 확인된 이스라엘 측 사망자만 해도 3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부상자 추정 약 1,590명), 침투한 하마스측 무장조직이 접경지대의 스데롯(Sderot)과 같은 도시들에서 경찰이나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대규모로 사살한 상황이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10월 8일(한국시간) 오전까지 기준으로만 해도 인질로 붙잡힌 이스라엘 군경 및 민간인의 숫자는 최소 53명으로 추산되는 등,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1973년 4차 중동전 발발 이래 역대 최악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번 공격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어쩌다 이스라엘이?” 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이런 성격의 공격에 대한 보안태세가 세계 최강이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국경및 대 테러 보안 솔루션에서 거의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노하우를 구축한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공격에서는 그런 이스라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어처구니 없이 속수무책으로 방어가 뚫린 모습을 보여줬다.

하마스측은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이스라엘 후방으로 침투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하마스측은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이스라엘 후방으로 침투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 어떻게 뚫었을까

일단 하마스측이 어떤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 위치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이의 경계를 돌파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드론을 이용해 이스라엘 전차를 파괴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경계선의 펜스를 넘어가는 등 하마스측이 이스라엘의 경계태세를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창의적 방법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동력 패러글라이더 같으면 그렇게 비싼 물건도 아닌데다 레이더등에 의한 탐지가 매우 어려운 수단이고, 하마스측은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아마 몇 km만 이동해도 될 경우도 많았을 듯- 의외로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1대에 한명, 잘 해야 두 명이 이동하는 정도로 페이로드가 낮은게 단점이라지만, 대당 가격이 비싼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2좌석 형식이면 우리 돈 약 수천만원 정도) 단 수십명만 경계선 너머로 침투시킬 수 있어도 남는 장사였을 것이다.

모터사이클이나 모터보트, 픽업트럭이나 불도저등도 대량으로 동원되었다고 알려졌다. 이런 것들은 몇 대 정도면 이스라엘의 국경 방어에 충분히 무력화됐겠지만, 수십대에서 수백대가 동시에 밀려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가자 지구의 경계선에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검문소들도 몇 곳이 있고, 이런 포인트에 포화 공격을 퍼부으면 소수의 경계병력이나 와이어 펜스 수준의 경계선 돌파는 의외로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동력 패러글라이더같은 수단으로 미리 후방에 침투한 인원들의 보조까지 있었다면 돌파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았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약 1천명의 하마스 무장인원들이 이스라엘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동안 하마스로부터의 로켓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지켰다’고 평가받던 아이언 돔 방공체계도 이번에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한번에 쏠 수 있는 요격용 미사일의 숫자는 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하마스는 최소 2,500발, 최대 5,000발로 추정되는 대량의 로켓 공격을 짧은 시간 동안 집중시켰다. 이스라엘이 배치한 아이언 돔 포대는 대략 10개 정도. 각 포대당 발사대는 최대 4기(3기인 경우도 있음)이고, 각 발사대는 20발의 미사일을 장착한다. 즉 최대로 잡아도 동시에 아이언돔이 요격 가능한 이론상의 위협은 800개가 한계다. 

참고로 2021년 5월 10~18일 사이에 이스라엘에 대해 발사된 하마스의 로켓은 4,340발로 추산된다. 1일 평균 약 482발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이번에는 하루도 아니고 길게 잡아야 한 시간(하마스측 주장은 20분) 사이에 최소 2,500발이 발사됐다. 즉 아이언 돔이 정상 작동했는지 아닌지는 이미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점령된 이스라엘 군 기지의 사진.
점령된 이스라엘 군 기지의 사진.

 

- 최대의 문제: 이스라엘의 경계태세/정보

이번에 하마스는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짜서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경계태세에 어떤 약점이 있는지를 확실하게 파악한 다음 이를 극복할 수단을 제대로 마련해서 기습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스라엘 자신의 느슨한 경계태세와 정보수집 실패가 있다. 아마도 이번 사건은 미국의 진주만 공습이나 9.11과 비교될, 사전 정보 수집과 분석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것 같다.

이번 공격은 아무리 은밀하게 준비하려고 해도 사전 징후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특히 짧은 기간에 막대한 양의 로켓뿐 아니라 각종 탄약과 무기를 비축하고 차량과 인원등을 집결시키면 그 징후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측은 이를 포착하고 제대로 대응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모사드가 있는 이스라엘이 왜 이랬을까.

모사드가 사실 과대평가된 조직이기도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에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해 점점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에 대해 직접 벌인 공격은 대부분이 소규모 인원에 의한 테러 아니면 로켓 공격이었고, 이 로켓 공격은 아이언 돔 배치 이후 이스라엘에 끼치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아이언 돔이 본격적으로 운용된 이후 이스라엘측에서는 로켓 공격을 포함한 하마스의 위협 전체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스라엘군과 정보당국의 시선이 남쪽의 하마스보다 북쪽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과하게 집중되면서 남쪽의 위협에 대해서는 ‘못 본 척’했다는 주장도 인터넷에 돌고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접경지역의 실질적 지배세력이 된데다, 이란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은 실질적 정규군급 세력화가 된 상황이라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가자 지구에 대해 이 정도로 정보수집과 경계에 실패한 부분은 하마스의 위협에 대한 과소평가가 바탕에 깔린, 이스라엘 정부와 군 고위층의 교만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 정도로 사전 정보수집에 철저하게 실패한 것을 보면 아니라고 하기도 힘들 것 같고, 또 접경지대의 경계태세도 이런 형태의 대규모 공격보다는 소규모 침투 저지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등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힘을 얻을 것 같다. 실제로 이번 공격에서 파괴된 이스라엘군 전차의 경우 경계선을 순찰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구 커버를 씌운 채 였을 정도로 즉응 태세가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인 다수를 인질로 확보한 상황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인 다수를 인질로 확보한 상황이다.

 

- 앞으로의 전개는?

이스라엘군은 일단 10월 8일(한국시간) 시점에는 하마스가 점령했던 군 기지나 경찰서등 주요 시설 및 스데롯 등의 이스라엘 민간 거주지역 대부분을 탈환했고, 하마스 무장세력은 다시 가자 지구 내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아무리 하마스의 공격이 성공적이었다 해도 ‘영토수복(팔레스타인 입장에서의)’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최소 50여명(실제로는 그 몇배로 추산)에 달하는 군인 및 민간인 인질의 존재가 부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 지구에 대해 가능한 한 최대의 공격을 퍼부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미 전 예비군이 총동원된 상황이고, 10월 7일(한국 시간) 7~8시 시점에 이미 이스라엘 공군이 최소 16톤의 각종 무장을 가자 지구 폭격에 사용한 상황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었다.

인명피해는 앞으로 막대할 것은 확실하다. 이미 가자 지구 내의 사망자만 해도 230명 이상/부상자 1,790명 이상(한국시간 10월 8일 오전 기준)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공습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육군이 가자 지구 내로 진입할 것은 거의 확실한 만큼 양측 인명피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가자 지구로만 충돌이 국한될 가능성은 낮다. 헤즈볼라는 만약 가자 지구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직접 진입한다면 레바논으로부터 이스라엘 북부 국경지대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양면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아무리 이스라엘이라도 이게 부담이 안 될 수는 없고, 승패 여부에 관계없이 피해는 상당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에 끼칠 ‘나비효과’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무기 지원은 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상태에 빠지면 미국이 이를 방관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자칫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줄이고 이스라엘을 도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이스라엘 자신의 NATO등에 대한 무기 수출에도 상당한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 방산업체 직원들 대부분이 이번에 소집될 예비군이니 말이다. 이스라엘의 방산업이 서방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는 서방세계 전반의 방어태세에 대한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하마스의 공격 배후에 러시아와 이란이 있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쨌든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중동지역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중동 지역의 불안정은 유가 상승부터 시작해 우리에게도 많은 악영향을 주는 만큼, 앞으로 이번 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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