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도 운용했던 그 소총이 한국군의 제식소총으로 "출세"를 했다면?!
2차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30년대 말부터 태평양전쟁으로 확대가 이루어진 1940년대 초반 미군은 시대에 뒤떨어진 총기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스프링필드 M1903을 제식으로 운용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마우저 Kar98K를 베낀 물건에 지나지 않았고, 엔필드 P17 소총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엔필드 P14 소총을 살짝 개조한 형태에 불과했지요.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소총의 수량 자체는 유럽 각국이나 일본을 능가할 정도의 수량이긴 했습니다만, 전장에서 보병의 창끝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성능의 총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개런드 소총이 있지 않냐구요? 네 맞습니다. M1 개런드 소총은 걸출한 명작이지요. 하지만 개런드 소총은 사실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생산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소총이었습니다. 1936년에 제식 채용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개런드는 전쟁 초기에는 그리 많은 양이 생산되지도, 보급이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존슨 소총은 아직 미국이 ‘빠른 차세대 제식 소총 도입의 필요성’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하던 시절에 탄생한 총입니다. 이 소총은 1936년에 ‘멜빈 존슨(Melvin Maynard Johnson Jr, 1909년 8월 6일 ~ 1965년 1월 9일)에 의해 설계가 이루어진 총으로, 1938년 3월에 미군의 테스트를 받았으나 경쟁 모델이었던 스프링필드 M1 개런드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고 다루기 어렵다는 점 등이 지적되며 차기 제식 소총 사업에서 탈락했던 소총입니다.
이듬해인 1939년에는 탄창을 더블칼럼에서 싱글칼럼으로 단순화한 모델을 선보였고 영국군도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역시 고배를 들이켜야 했지요. 이후 1939년 6월에는 30-06탄을 더블칼럼에서 싱글칼럼으로 변경한 탄창이다보니 총몸에 장착된 내부탄창의 길이가 두배가 되어 총상하부에 돌출되므로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으로 인해 결국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일본의 남방 진출이 시작되면서 존슨 소총에도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존슨 소총에 관심을 보인 건 네덜란드였습니다.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의 자국 식민지에 대한 일본의 침공에 대비하여 식민지에 주둔하고 있는 현지의 군대와 왕립 해군을 위하여 초도 물량으로 소총 10,200 정과 추후 소개해드릴 존슨 기관총 515정을 주문하고, 최종적으로는 5만 정이 넘는 존슨 소총을 발주하지만, 3천여 정을 납품 받은 상태에서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모두 일본에 함락되는 바람에 물거품으로 돌아갑니다. 비슷한 시기에 노르웨이도 존슨 소총에 관심을 보이고 도입 절차가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나치스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진주만 공습의 여파로 미군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육군 및 해병대에 신형 소총을 빠르게 공급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육군에 비해 장비 면에서 열악한 해병대가 큰 문제였지요. 따라서 미 해병대는 제식 소총이긴 하지만 수량이 상당히 부족한 M1 개런드와 기존에 운용하던 ‘구식 소총’들 간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 존슨 소총을 운용하기로 합니다. 때마침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에 공급될 예정으로 생산이 이루어진 재고들이 당사국들의 사정으로 인해 인도되지 못한 것도 있어, 미 해병대는 M1941이라는 명칭으로 존슨 소총과 기관총 재고 상당수를 인계받아 종전까지 적잖은 수량을 운용하게 됩니다.
존슨 소총은 탄환 발사 시 블로우백 작용으로 총신이 후퇴하는 숏 리코일 방식의 소총이며, 이 과정에서 0.625인치(15.8mm)를 후퇴하면 총신에 맞물려 있는 노리쇠가 20도 각도로 회전하면서 탄피를 배출하고, 다시 전진하는 과정에서 로터리 방식의 탄창 내부를 회전시켜 급탄이 이루어지는 다소 복잡한 방식을 채택한 소총입니다. 이 때문에 내부 구조가 복잡했고 총신이 후퇴-전진하기 때문에 기존에 미군이 사용하던 총검을 장착할 수 없었습니다.
존슨 소총의 복잡한 작동 방식 및 급탄 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3D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때문에 총검의 형태 및 길이가 전용 규격으로 변경되었고, 이 마저도 초기에는 총신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몇 차례에 걸쳐 디자인이 수정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미 해병대 내에서 존슨 소총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클립 방식이 아닌 탄창 방식이기에 전탄을 소모하지 않아도 급탄이 훨씬 용이한 점, 개런드에 비해 2발이 더 들어가는 장탄수, 의외로 상당히 좋은 명중률, 그리고 개런드나 M1903에 비해 적은 반동 등 긍정적인 부분도 많았습니다.
미 해병대가 소화하지 못한 물량은 지금의 대만군의 전신인 국민혁명군이 상당량을 소화했고, 이 중 일부는 대한광복군이 운용하기도 했으며, 국공내전 당시에는 노획한 일부를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신인 중국공농홍군이 운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2차대전 및 태평양전쟁 종결 후에는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동인도군,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인도네시아 독립군 양측이 모두 운용하기도 했지요.
전후에는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차기 제식소총으로 채용할..뻔 했지만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미국에서는 퇴출된 이후 이스라엘이 재고를 상당수 떠앉기도 했으며, 미 해병대에 납품됬던 물량들과 부품들은 이후 한 민수 총기 업체가 인수하여 수렵용 총기 등으로 탈바꿈하여 간간히 판매되기도 했지만 결국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이 업체도 파산하면서 짧은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그래도 간간히 총기 경매 등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물건이긴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에 트루먼 행정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여하지 않고 예정대로 1946년에 일본 본토 침공을 했더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정되어 있던 대한 광복군이 연합군의 한 축으로 일본 본토 침공 작전에 투입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이후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의 제식 소총이 존슨 소총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운용 경험을 살려 ‘케이 존슨 소총’을 한국인의 체형과 한국군의 실정에 맞게 개발했더라면?!?!
그래서 한 번 그려봤습니다. 이름하야 ‘케이(K) 존슨 소총.’ 어떻습니까, 나름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으하하하하.
다행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네엡.
이상, 김찬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