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경기도 화성 인근 야산에 F-5E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했다. 왜 조종사가 비상탈출을 못 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지는 조사가 더 필요하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F-4E와 F-5E/F라는 노후 기체의 대체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한 상황. 이제는 누구도 부인 못할 우리 정부와 군의 중대한 실책임이 분명하다.
2000년 이후 전투기 추락사고의 통계(주: 언론 보도등을 통한 집계이므로 오차 여지 있음)를 보면 뚜렷한 경향성이 있다. F-5E/F형이 압도적으로 추락 횟수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 운용중인 모든 전투기들은 지난 20년(2001년 이후)간 기종별로 최소 2대씩의 추락을 기록했다. F-15K가 2회 추락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수명이 짧은 축에 드는 KF-16이 4대, F-16C/D(피스브릿지)가 4대다. 가장 수명이 긴 F-4E의 경우도 4대다.
반면 F-5E/F형은 같은 기간 중 무려 13대가 추락 혹은 충돌을 겪었다(일부 보도에 의하면 15대. 어쨌든 10대를 훌쩍 넘는 소모임에는 틀림없다). 기체 노후화의 문제도 분명 있다. 미국제 직도입분은 1974년부터, 국내 생산분도 1982년부터 도입됐고 1986년에 도입이 종료됐으니 미국제 직도입분이 전부 퇴역했다 쳐도 현재 운용중인 F-5E/F계열 기체는 전부 36~40년 된 확실한 노후기체다. 여기에 미국 직도입분 일부도 여전히 현역이므로 평균 기령은 거의 40년이라고 봐야 맞는 상황이다.
하지만 더 오래된 팬텀(F-4E)의 추락이 훨씬 적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바로 임무 패턴과 기체의 성능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F-5E/F는 중고고도에서 대지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도 KGGB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이후인 2010년대에야 확보됐고, 가시거리밖 공대공 전투(BVR) 능력은 아예 없으며 가시거리내 공대공 전투(WVR) 역시 적기를 전투기의 진행방향 축선(LOS)에 둬야 조준 가능하다. 심지어 레이더도 거의 거리측정/조준용에 가까운 짧은 탐지거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즉 더 오래된 팬텀보다도 훈련중에 저공비행및 근접 공중전 기동 등 난이도 높은 기동을 해야 할 필요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원래 저렴한 경전투기로 설계된 F-5E의 근본적 한계라고 퉁쳐버리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F-5E/F도 브라질이나 싱가포르 등 많은 운용국들이 진작에 4세대 전투기급으로 현대화해 BVR능력 및 공대지 정밀유도무기 운용능력등을 일찌감치 부여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넘어가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즉 노후 기체를 현대화하건, 교체하건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고 넘어가 버린 공군과 국방부, 정부의 실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F-5E/F는 단순히 추락이 많은 것만 문제가 아니다. 사망률 또한 심각하다는게 문제다. 조종사가 무사히 비상탈출한 사례는 2건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1회의 비상착륙을 제외하면 전원 사망으로 사망자가 13명에 달한다. 저공 비행중의 추락이나 근접공중전 훈련중의 충돌등 인명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형태의 비행이 많은데다, 2011년 이전에는 제로제로 사출좌석(고도가 0인 상태에서도 사출이 가능한 사출좌석)도 장착되지 않는 등 구식화/노후화에 따른 문제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높은 사망률을 두고 “민가에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 살신성인했다”등으로 미화하거나 “전투기를 잃으면 경력이 끝장나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라는 등으로 오도하지만, 전투기 추락사고 중 타 기종들의 탈출 비율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 2001년 이후 F-16C/D형(피스브릿지)은 4회의 추락사고 중 전원이 비상탈출에 성공했고, KF-16도 4회 중 한 건만 탈출에 실패했다. F-4E도 4회 중 2건은 비상탈출에 성공했다. 즉 우리 공군 조종사들도 기회가 허락하면 적극적으로 비상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월 11일의 F-5E 추락도 교신내용에서는 조종사가 의도적으로 비상탈출을 포기한 정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F-5계열의 높은 사망률은 탈출을 대하는 공군의 문화 때문이기 보다는 그만큼 기체 자체가 위험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맞을 것이다.
애당초 F-5계열은 빠르면 2000년대, 늦으면 2010년대에는 교체되었어야 맞다. 하지만 IMF등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퇴역이 늦어졌고, 설상가상으로 KFX개발이 지연되면서 2030년까지는 현역으로 운용되어야 할 상황이다. KFX의 양산과 배치가 조금만 늦어져도 퇴역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마저 있다.
이는 우리보다 상황이 열악한 대만과 비교하면 특히 뼈아픈 부분이다. 대만은 우리와 달리 돈이 있어도 전투기를 맘대로 살 수 없다. 미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도 전투기를 팔려 하지 않으며, 미국조차 매우 까다롭게 수량과 종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대만도 F-5E/F의 대체를 위해 고군분투했고, 전투 및 정찰기로 사용하는 F-5E/RF-5E형은 2024년, F-5F형은 2027년까지 완전히 대체할 예정이다. 우리보다 전투기 도입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먼저 F-5E/F형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물론 F-5E/F형이 100대를 훌쩍 넘는 숫자라 이걸 당장 없애면 전력공백이 심각하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이것의 대체를 그저 KFX라는 불확실한 대안에만 의존하면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다가 10여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특히 현 시점에서는 전력공백을 막으면서 F-5E/F를 신속하게 대체할 방법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F-16계열은 중고기체 도입조차 쉽지 않다. 이미 쓸만한 미 공군의 중고 기체 대부분이 다른 나라들에서 업어가버린 상황이고, 그나마 남은 물량도 미국이 우리 정도로 잘 사는 나라에 팔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 외 다른 기체들은 중고든 신형이든 최소 몇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매물 파악및 협상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신형을 제조한다면 또 몇 년은 소요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다고 할 FA-50계열의 양산조차 당장 뚝딱 되는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F-5E/F를 그냥 이대로 유지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구체적인 해답은 결국 전문가들이 찾아야겠지만, 전력공백만 걱정하다가 아까운 목숨이 또 사라질 가능성은 언제든 상존한다. 이 문제에 늦게라도 공군이 최선을 다하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