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재미있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스미토모 중기계의 로고. 
스미토모 중기계의 로고. 

1888년에 설립된 스미토모 중기계(住友重機械工業株式会社, Sumitomo Heavy Industries)는 2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기업 중 하나로, 모회사가 되는 스미토모 상사의 산하 업체다. 스미토모 상사는 무려 1615년에 창립한, 어마무시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창업주는 구리 제련 사업으로 오사카에서 번창한 파계승, 스미토모 마사토모(住友政友, 1585년 12월 31일~1652년 9월 17일). 

스미토모 상사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리 좋지 못한 이미지와 관련성이 짙은 업체다. 일제시대에 한국인 노동자들을 상당수 강제징용으로 끌고 간 이력이 있는 신일본제철이 계열사로 남아 있고, 이 외에도 2차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함상공격기나 각종 군함을 제조한 이른바 '전범 기업' 중에 하나다. 태평양전쟁 종결 직후 미군정(GHQ)에 의한 재벌 해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이후 종합상사로 거듭나 오늘에 이른다.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1.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1. 

계열사인 스미토모 중기계는 조선, 동력 전달 장치, 플라스틱 성형기, 레이저 절삭 가공 시스템, 중입자 가속기 같은 규모가 큰 제품이나 설비 쪽을 비롯하여 건설용 중장비 뿐 아니라 암 진단 및 치료 장비 같은 분야도 담당하는 등 그 비즈니스 영역이 문어발처럼 넓은 편이다. 방산산업 분야에 있어서는 전후 종합상사로 재편된 구 일본의 재벌 기업들 중에서는 가장 빠른 편으로, 특히 총기 사업 분야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미군정과 주일미군의 총기들, 이후 창설된 자위대의 총기들을 수리하거나 라이선스 생산하여 납품하는 등의 실적을 쌓아오다가 1969년에 스미토모 중기계가 설립되면서 산하로 편입되게 된다.  

앞서, 폐사의 홍희범 편집장께서 자위대의 신형 기관총 사업에서 스미토모가 철수했다는 소식을 기사로 알려드렸는데, 스미토모는 현재 방산 분야에서 전면 철수하거나 혹은 규모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이는 스미토모가 전후 이 분야에서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는데다가, 상사 전체의 수익 구조 안에서도 방산 분야 특히 총기 분야가 거두어들이는 수익이 적고 가장 큰 문제로 '스미토모에서 생산한 총기들은 내구성이 낮고 고장율이 높아 도저히 쓸만한 물건이 못 된다'는 현장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많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1962년 2월 15일에 제식 채용된 자위대의 범용 기관총, 62식 기관총. 원래는 스미토모에서 개발한 총기가 아니라 카와사키 중공업과 닛토 제철소에서 공동으로 개발하던 것이 스미토모에 합병되면서 스미토모 62식이 되었다. M1919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총으로, 사실 급탄부의 형상이나 가늠자, 삼각대 장착부 등에서 M1919와 흡사한 부분이 많은 독특한 총기다. 제식 채용 당시 가격은 1정 당 200만엔. 
1962년 2월 15일에 제식 채용된 자위대의 범용 기관총, 62식 기관총. 원래는 스미토모에서 개발한 총기가 아니라 카와사키 중공업과 닛토 제철소에서 공동으로 개발하던 것이 스미토모에 합병되면서 스미토모 62식이 되었다. M1919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총으로, 사실 급탄부의 형상이나 가늠자, 삼각대 장착부 등에서 M1919와 흡사한 부분이 많은 독특한 총기다. 제식 채용 당시 가격은 1정 당 200만엔. 

아니, 스미토모 그룹 25개 계열사 중 스미토모 중기계는 버블 붕괴 이후 그 여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중기계 분야에서는 일본 내 랭킹이 17위, 전세계 랭킹 44위로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한때 스미토모 그룹의 혜자로 불린 조선업의 경우에는 1979년에 세계에서 가장 긴 초대형 유조선(Ultra Large Crude Carrier, ULCC), Seawise Giant호를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앵간한 모터요트 한 척 제대로 못 만드는 업체로 전락했으니까. (Seawise Giant는 전장 458미터에 만재배수량이 무려 646,642 롱톤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음. 서두가 좀 길어졌는데, 여하튼 기관총. 다들 익히 잘 아시다시피 일본 자위대는 보병용 기관총으로 스미토모에서 개발한 7.62mm 구경의 62식 기관총(62式7.62mm機関銃)과 5.56mm 구경의 미니미를 병행 운용하고 있다. 원래는 62식을 다 밀어내고 후속 기종인 미니미로 대체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었지만 자위대 특유의 느릿느릿한 납품 및 조달 방식(이건 일본 국내법에 따른 한계에 의한 부분도 있지만) 덕분에 결국 미니미는 62식을 다 밀어내지 못했다.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2.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2.

62식 기관총은 전후 일본이 자국 기술로 개발한 첫 보병용 총기이자 첫 기관총이라는 의의가 있는 물건이지만, 여러모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건이다. 내구성도 낮고 성능도 낮았고 내부 구조는 복잡하고 왠지 FN MAG과 M60의 단점이란 단점은 모두 계승한 듯한 조작 불편성에 무겁고 심지어 고장율도 높았다. 특히 약간의 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총이 전탄 발사되는 이른바 'Cook Off' 현상도 심한 물건이고 사격 중에 급탄이 잘 안되거나 잼이 걸리는 현상도 너무 자주 일어나는 물건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총기에 별명을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하는 자위대원들이 62식 기관총에 달아준 별명이 오죽하면 'Auto Jammer'였겠는가. 신속한 총열 교환 및 운반을 위한 운반 손잡이와 총몸 간의 결합부 내구성이 극도로 낮아서 이동 중에 총기와 분리되는 불상사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제원 상 발사속도는 분당 650발 정도인데 실제로 운용을 해본 이들은 '총기 결함이나 내구성 때문에 총을 지키려고 가스압을 조절하여 보통 분당 80발 정도로 쓰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기관총 맞아?)

뭐 이 쯤 되면 L85A1이나 INSAS는 정말 명품에 해당한달 정도가 아닌지.  

이후 도입된 차량 탑재용 모델인 74식 기관총은 62식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한 물건이 되긴 했지만 이쪽도 문제가 많았다. 62식을 개량한 모델인데 62식과 호환되는 파츠가 의외로 많지 않아, 차량용을 떼어내어 보병용으로 개조하기 어려웠다. 급탄부와 폐쇄장치의 형태나 작동 방식이 아주 특이한 총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기관총들과 달리 62식은 탄을 급탄시켜 주기 위한 회전 레버가 노리쇠 뭉치 위에 오는 독특한 구조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급탄용 링크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약실에 넣어주기 위한 돌기 장치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벨트 급탄식 기관총들과 정 반대 위치에 있다는 이야기다.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3. 노리쇠 뭉치, 피스톤, 복좌용수출, 노리쇠의 형상이 FN MINIMI에 근접한 형태로 변화한 모습을 알 수 있다.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3. 노리쇠 뭉치, 피스톤, 복좌용수출, 노리쇠의 형상이 FN MINIMI에 근접한 형태로 변화한 모습을 알 수 있다. 

자위대는 1980년대에 몇 차례 보병 전술 교리를 변경한다. 그 중에 하나가 7.62mm 기관총을 없애버리고 모두 5.56mm로 통일한다는 방침이었다. 소총탄보다 강력한 화망을 펼쳐 지원하는게 맞을텐데 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디까지나 '전수방어'를 목표로 하던 자위대 입장에서는 보급을 일원화시키고 대신에 부족한 화력을 대전차화기나 다목적 직사화기로 메꾸는게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참한 62식을 대체하기로 도입한 미니미의 납품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이런 교리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일본 방위성과 육상 자위대는 해외산 제품의 직수입 및 운용이 가능해지도록 관련 법안이 개정된 시점부터 62식을 대체할 기관총으로 미군이 운용하는 M240B의 노후 기종들을 불하받아 사용하거나 직수입을 하기에 이른다. 다만 이렇게 도입한 총기들의 수량은 그리 많지 않기에, 주로 제1공정여단이나 중앙즉응집단 예하 일부 부대들에만 지급하는 형태로 이어졌고, 아직도 자위대의 여러 각 방면 보통과 부대들은 '진작에 없어졌어야 할 62식'과 '그 후속 기종'을 병용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미군의 자문을 받아가며 M240B의 기종 전환 훈련을 받고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원들의 모습이다. 
미군의 자문을 받아가며 M240B의 기종 전환 훈련을 받고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원들의 모습이다. 

자위대와 방위성은 2014년 경에 이르러 보병용 총기들에 대한 현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여기에는 신형 소총과 권총, 개인이 휴대 가능한 유탄발사기, 그리고 소총과 탄을 공유할 수 있는 기관총의 개발 혹은 도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로 탄생한 소총이 바로 20식 소총이다. 편집장님께서 언급하신 H&K SFP9도, 베레타의 모듈러 유탄발사기인 GLX160도 그렇다. 여하튼, 2014년에 소요제기가 이루어진 일본 방위성의 차기 경기관총 도입 사업은 2018년 경에 이르러서야 후속 기종들에 대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방위성의 요구 사항들 중에 몇 가지 재미있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첫번째는 모듈러 개념을 설계에 반영하라는 것. 뭐 당연한 느낌이다. 두 번째는 피카티니 레일을 장착하여 광학장비 등의 운용에 편리하게 설계된 총이어야 한다는 것, 세번째는 개머리판의 길이 조절 및 광학장비 운용에 따른 뺨 받침대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할 것, 네번째는 탈부착이 용이한 양각대, 그리고 "멀티 캘리버" 모델이어야 할 것의 다섯 가지다. 그리고 당연히, 여기서 가장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이 "멀티 캘리버" 부분이다.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4.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4. 

공통된 총몸에 리시버 일부나 총열, 노리쇠뭉치, 복좌용수철, 피스톤 등만 교체하여 5.56mm나 7.62mm로 변환하는 것이 가능한 기관총은 꽤 많은 편이다. 서로 완벽히 호환되지 않더라도 일부 부품이 호환되는 기종들은 정말 많은 편이고, 아예 일부 부품만 교체하면 전혀 다른 구경의 기관총으로 변모하는 경우들도 많은 편이긴 하다. 대표적으로 남아공 군이 운용 중인 Denel SS-77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탄종을 바꿔 가면서 운용하진 않지만 여하튼 그렇다. 

자위대나 방위성이 생각한 '부품 몇 가지만 교체해주면 분대지원화기에서 범용 기관총으로 변신이 가능'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뭐, 그 아이디어 자체로만 보면 꽤나 흥미롭고 일순 상당히 앞선 생각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부품이 서로 호환되거나 공유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정비 면에서도 효율은 올라가니까. 수륙기동단 창설이나 해상자위대의 상륙 공격 능력을 강화하곤 있다 해도 여전히 기본적인 전술 교리 자체가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고 있는 자위대의 기본 전략에도 부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해.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5. 장전손잡이의 형태나 탄피/급탄 링크 배출구의 형상은 미니미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듯 보인다.  
2019년에 일본 특허청에 출원된 스미토모 중기계의 신형 기관총 단면도 5. 장전손잡이의 형태나 탄피/급탄 링크 배출구의 형상은 미니미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듯 보인다.  

문제는...5.56mm나 7.62mm로 교체하는 것 외에도 '.22LR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응? 뭐지? 혹시 민수용 총기 수출 시장이라도 고려를 한 건가? 싶어 방위성에 있는 지인이나 예비역 자위대원 지인들을 총동원하여 이게 도대체 뭔소린지 좀 알아보니, 뭔가 그럴싸한데 동시에 "아니 도대체 왜"라는 느낌의 이 발상은 바로 "사격 훈련을 할 때 보다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조달가의 탄환으로 하면 더 좋지 않겠냐"는 일본 특유의 탁상공론에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단다. FN이나 헤클러 운트 코흐, IWI는 당연히 이런 요구에 코웃음만 치며 "뭔 X같은 소리야"로 일관했다지만, 스미토모는 이러한 요구 사항에 나름 착실하게 대응을 하려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사가 제조, 납품했던 62식이나 74식 기관총의 자위대 내부에서의 평판이 워낙에 좋지도 않은데다가, 2013년에는 품질 평가 조작 비리도 터졌으니 스미토모로서는 '안 좋은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방위성과 자위대의 요구에 모두 부합하는 총기'를 만들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설계 도면을 토대로 플래툰 김기자가 그려본 스미토모 신형 기관총 상상도. 뭐 그럭저럭 예뻐 보이긴 하다만 K15나 K16에 비해 더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설계 도면을 토대로 플래툰 김기자가 그려본 스미토모 신형 기관총 상상도. 뭐 그럭저럭 예뻐 보이긴 하다만 K15나 K16에 비해 더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단 일본특허청에서 내려 받은 자료들과 도면들을 보고 있자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좀 있긴 하더라. 가령 피드커버에는 피카티니 레일을 기본 장착하여 광학 조준경을 쉬이 운용할 수 있게 한 점이나, 개머리판의 높낮이 및 길이 조절이 가능한 부분 등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이제는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버리고 있는 '급할 땐 탄창으로도 급탄 가능'이라는 정말 고장 유발의 원인 + 외부 먼지 유입 외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기능이 제외되었다는 부분 등은 나름 높게 평가할 만 하지만, 가늠쇠는 접이식으로 만들어놓고도 총열 덮개 부분에는 정작 레일은 커녕 조각레일을 달 수 있는 슬롯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레이저 표적지시가 같은 걸 부착하기 어려운 설계라는 점이나, 왠지 제대로 고정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양각대 등은 '스미토모가 스미토모 했군 이번에도'라는 느낌이더라는 거지. 

뭐, 스미토모가 차기 신형 기관총 사업을 통해 그간의 오명을 벗고 새로운 강자로 태어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자세한 건 하단에 링크한 홍 편집장님의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이게 만약에 나와서 채용이 되었다는 또 그건 그것대로 꽤 재미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좀 있고 그렇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 

이상, 플래툰 매거진 김찬우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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