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로 국경을 넘어 탈출중인 러시아 남성들
조지아로 국경을 넘어 탈출중인 러시아 남성들

러시아의 동원령이 선포되었다(드디어). 정식으로는 예비군 200만 중 30만을 동원하는 “부분적 동원령”이라지만, 이미 러시아 곳곳에서 무차별에 가까운 징병이 이뤄지고 있으며 실제 동원 목표는 120만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과연 이 동원령. 전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낙관론과 비관론 둘 다 가질 수 있다.

 

- 낙관론: 러시아의 한계

낙관론을 펼치는 쪽에서는 러시아가 이미 보이는 한계가 동원령으로 극복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사실 군수물자 생산등 많은 면에서 이미 실질적 전시 동원체제에 가까운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의 러시아군은 뭐 하나 넉넉한게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포병전력조차 HIMARS에 의한 잇따른 탄약고 타격으로 포격 밀도가 눈에 띄게 줄었고, 그로 인해 유일하게 러시아군의 공세가 이어지는 바흐무트등 일부 지역에서도 지난 6월에 보여줬던 수준의 느린 진격 속도조차 -그 당시에조차 약간의 거리를 진격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뤄야 했던-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갑자기 대량의 신병을 밀어넣는 것은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재앙이나 다름없으리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 신병들은 상당수의 필요 물자를 보급도 아니고 “개인 지참”해야 한다는 판이니, 전선까지 도달하면 이들의 상태나 사기는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훈련 역시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주일이나 그 이하만 훈련받고 투입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이들 중 다수는 전선에 도달할 때 까지 극도의 피로에 시달려야 할 판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관측한 바에 따르면 전선에 도착하는 신병들 -아직 동원령으로 모집된 인원들은 아닌 듯 하지만- 은 상당수가 트럭도 아니고 도보로 온다고 한다. 철도로 이동한 뒤에 전선까지 이동할 차량들이 보급물자 수송에도 부족한 판이라 병력은 걸어올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HIMARS타격으로 인해 러시아군이 보급에 사용하는 철도 종착역들이 예전보다 수십km 뒤로 후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수십 km를 걸어서 전선에 도달해야 하는데, 도달한지 얼마 안되어 곧바로 전투에 투입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이들이 제대로 된 전투병력으로 작용할지 크게 의문이라는 이야기다. (추가: 이 부분은 우크라이나군의 일방적 주장인 듯 하니 검증이 좀 필요할 듯)

여기에 10월이면 라스푸티차, 즉 늦가을의 비로 전선은 진창이 되어버리고 11월이면 겨울이 시작되어버린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군의 보급 상황을 보면 전선에 급히 투입된 신병들에게 제대로 된 방수/방한 장비나 난방장비등이 지급될지 의문시되고 있다. 자칫하면 이들이 전사하기 전에 저체온으로 떼죽음당할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즉 아무리 몇십만을 징집해 새로 투입한다 해도 전황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은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의 다른 편에는 비관론도 있다.

 

- 비관론: 병력=무게

비관론은 뭐가 어쨌든 갑자기 수십만의 병력이 신규 확보되는 것은 그만큼 러시아에게는 유리하고 우크라이나에게는 불리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 역시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부분이다.

러시아의 말대로 30만이 동원된다면 이 인원중 10만명만 전선에 단시간에 투입해도 전선의 병력밀도는 크게 올라간다. 그리고 밀도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중 하나다.

따지고 보면 2~3월에 러시아군이 키이우 및 하르키우등 북부전선에서 고전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도 면적에 비해 병력의 밀도가 지나치게 낮은 것이었고, 5~6월의 돈바스 지역 공세에서 성과를 거둔 이유를 포병 화력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병력의 밀도가 크게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이를 지원하는 포병 밀도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2~3월의 북부전선에서는 병력의 밀도 저하가 자연스럽게 포병 화력의 밀도 저하로 연결되면서 러시아군의 강점인 포병 화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군 포병과의 대결에서 밀려난 면도 있었다.

사실 최근 이뤄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과 그로 인한 러시아군의 패배도 밀도 문제가 크다. 반격이 이뤄진 하르키우 전선에서는 최근 러시아군이 남부 헤르손 일대의 우크라이나군을 막아내기 위해 다수의 병력을 빼냈고, 그 때문에 러시아군의 밀도가 아주 낮아졌다. 이번에 우크라이나가 탈환한 면적이 얼추 우리나라의 도(道) 하나보다 조금 작은 수준인데, 거기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1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는 러시아군이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주춤하고 있다. 전선이 좁아지면서 그만큼 러시아군의 밀도가 높아지자 진격 속도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즉 러시아군의 밀도에 따라 전황이 변하는 것을 확실히 볼 수 있다. 훈련이 안되고 보급이 엉망인 병력이라도 좋으니 밀도 그 자체만 다시 높일 수 있어도 전황이 러시아에 다시 유리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러시아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병력이다. 아무리 엄청난 양이 파괴되었다고 해도 러시아군이 동원할 수 있는 장갑차량과 야포등 중장비의 숫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그것보다 많다. 병력이 보충되면 기존에 소모된 부대를 재편성하거나 새로운 부대를 편성하는 등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크게 늘어난다.

참고로 러시아군이 2월 개전 시점에 동원한 총병력은 대략 18~19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에 동원할 병력이 최소 30만이다. 물론 현재의 우크라이나군과 2월의 우크라이나군은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2월 당시 19만의 러시아군에게 상당부분 밀렸던 것을 생각하면 30만의 러시아군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리 러시아군의 훈련과 보급이 악화된 상황이라도 절대로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추가: 러시아군측 훈련과 보급의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라도 개선될 가능성은 있는 만큼,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 여론의 영향은 아직 미지수

갑작스런 대규모 동원령으로 러시아의 국내 여론이 반전으로 돌아서고, 러시아군 내부에서도 동원에 불만을 가진 신병들이 대거 몰려오면 결국 러시아가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져 전쟁이 조기에 끝나는거 아닌가 하는 낙관론도 있지만, 이런 낙관론은 현실성이 낮다.

분명 러시아 내에서 상당한 반발이 나타나고 대규모 탈출사태가 나오는 등 여론이 이번 동원령에 대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 국가의 명령에 반하는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소련 체제를 흔든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1979~1989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에도 소련 여론은 매우 안좋았고 소련 병사들의 체제 불만은 심화됐지만, 결국 10년을 끌고서야 끝났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베트남 전쟁이 전국적인 반대여론에 직면했지만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7년이나 끌었다.

즉 이번 동원령으로 러시아 내부에서 반발이 심화된다 해도, 그것이 단기간에 영향을 끼친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그로 인한 영향이 나온다 해도 최소 몇달, 잘못하면 몇년 뒤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어떤 형태로든 전황이 유리하게 전개되면 반발이 무마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여론의 반발로 푸틴 정권이 위협을 느낄 상황이 금방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아예 그런 상황이 안 생길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 어느 쪽이든 전쟁은 장기화

이번 동원령이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두고봐야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전쟁 장기화될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이번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희미하게 가졌던 조기 종전의 희망은 무너진 듯 하고, 앞으로 누가 어떻게 이기든 전선은 더욱 더 참혹해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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