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S-1A를 사격중인 러시아군

 

지난 5월 이후, 러시아군은 공세를 이어가고 있고 점령지를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진격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한 달이 넘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하루 수백미터에서 많아야 몇 km의 진격이 고작이며, 그나마도 돈바스 지역의 상대적으로 협소한 공간 안에서 점령지를 조금씩 넓혀가는 추세다.

사실 4월에 전쟁이 소위 말하는 ‘2단계’로 넘어갔을 때 사람들은 돈바스 지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기갑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고, 러시아군이 일단 승기를 잡으면 대대적인 기동전을 수행해 돈바스 일대를 휩쓸 것으로 우려했다. 반대로 큰 타격을 입은 러시아군이 공세를 감행하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큰 피해를 입고 공세가 좌절될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이 대대적 반격으로 대역전극을 펼칠수도 있다고 기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두 달이 지난 현재, 현실은 그 중간 어디쯤이 되어버렸다. 러시아군은 계속 밀고 들어오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고, 우크라이나군은 결사적으로 막고는 있으나 이럴 때 중요한 ‘되받아치기’를 못하고 있다. 이것이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게 평야지대가 펼쳐져 대규모 기동전에 유리한 지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 1차 세계대전의 재림?

간단하게 말해서, 현재 돈바스에서의 상황은 1차 세계대전이 차라리 가까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참호를 파고 곳곳에서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치고 있고, 러시아군은 이를 뚫기 위해 대대적인 포격으로 저항을 최대한 무력화시킨 뒤 돌격을 감행하지만 우크라이나군도 필사적이어서 러시아군이 돌파에 성공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대전차화기의 위력을 우려한 러시아군이 장갑차와 전차를 선두에 세우는게 아니라 보병을 먼저 돌격시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보니 돌파에 걸리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피해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물론 방어선에서 포격을 왕창 뒤집어 쓰는 우크라이나군 역시 피해가 속출하는 거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러시아군은 러시아군대로 이런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고 어떻게든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의 공백을 찾아 돌파를 시도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크라이나라고 빈 손은 아니라는 것. 운이 좋으면 하루 10km이상의 진격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게 오래 가기 힘들다.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대로 드론이나 서방측의 정보제공을 통해 이런 러시아군의 공세를 포착해 포격이나 대전차 매복등으로 종종 저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게 반대로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애당초 돈바스 일대에서는 병력도 총 전력도 열세였고 그게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여기에 러시아도 바보는 아니라 드론등을 통해 어떻게든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이동을 포착하려 할테고, 포격등으로 이를 저지할 수 있다. 

결국 종합적인 전력에서 우세한 러시아가 공격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마치 1차 대전 마냥 한 걸음 뗄 때마다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며 우크라이나 역시 그에 따라 상당한 출혈을 강요당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 역시 돈바스 공세의 최대 목표라 할 현지 우크라이나군 주력 -2014년부터 현지에서 싸워 가장 경험이 풍부한- 을 포위섬멸하는 것은 번번이 실패했고 지금 추세로 보면 그걸 성공시키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러시아 전차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러시아 전차

 

- 결국은 둘 다 역량부족

지금같은 상황이 닥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우크라이나군의 총 전력도 부족하지만 러시아군의 동원 전력 역시 세계 2위를 자랑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라는게 문제다.

러시아가 돈바스에 투입한 병력은 약 8~9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현지의 우크라이나군(4~5만) 보다 우세하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돌파’를 시도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 부족한 것을 엄청난 포격으로 간신히 메꾸며 진격은 하지만 이래서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전차를 앞세워 밀어붙이려 해도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 화력이나 포격도 문제거니와 전차의 숫자도 넉넉하지 않다- 워낙 전차 소모가 크다보니, 온갖 방법으로 전차를 보충해도 그 동안 입은 손실을 100% 만회하지 못하는 판이다(오죽하면 T-62까지…).

미군이라면 모자라는 숫자를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커버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러시아 공군이 현지의 제공권을 100%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러시아 공군은 ‘우세할 뿐, 게임체인저는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군처럼 중고도 이상에서 유도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근접지원이 여전히 무유도 로켓과 폭탄으로 이뤄지는 만큼 맨패즈등의 위협 때문에 항공력 운용이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이런 러시아군의 난맥상을 활용해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객관적인 전력이 러시아군보다 뒤쳐지는 상황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특히 전차와 포병이라는 양대 산맥의 부족이 큰 문제고, 군수지원 능력도 여전히 부족하다.

서방제 무기 지원도 아직은 부족하다. 애당초 약속한 무기들이 다 도착한 것도 아니다. M777 곡사포만 해도 아직 원래 약속한 약 100문 중 1/3도 우크라이나군에 전력화되지 못한 듯 하다. 보내는 자체도 수송기에 의존해야 하는데다(배로 보냈으면 시간이 더 걸릴테니), 그게 또 폴란드에서 교육요원 훈련을 겪어야 하고 그 뒤에 또 폴란드에서 육로를 통해 전선까지 이동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아직까지 서방제 무기들이 ‘게임체인저’수준으로 지원된 것도 아니다. M777이나 간신히 백 단위로 보내졌지, 나머지는 이거 찔끔 20문, 저거 찔끔 10여문 이런 식이다. 게다가 대다수가 155mm 곡사포다 보니, 그 정도 숫자로 러시아군의 포병 전력을 압도할 수준은 아니다.

 

- 서방측 지원은 이어지지만

물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어두운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는 K9과 동급인 크랍(Krab) 자주포 약 80문 -사실상 폴란드군 보유분 전체- 을 넘겨줄 예정이고, 미국과 영국도 HIMARS와 M270등의 MLRS를 지원할 예정인데다 사거리 70km의 GPS 유도 로켓까지 지원하려 하는 등 화력면에서의 열세를 어떻게든 메꿔보려고 애는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간단하게 형세를 역전시킬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이런 무기들을 지원한다고 당장 전력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여전히 숫자가 많지는 않다. 러시아군의 포병전력은 대다수가 구형이라지만 어쨌든 숫자 하나는 많다.

실제로 당장 우크라이나가 동원 가능한 전력의 한계는 돈바스 이외 전선에서 보여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남부의 헤르손과 북부의 하르키우 일대에서 반격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러시아군 전력의 대부분이 돈바스에 집중된 상황이라, 우크라이나군 전력에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어도 남부와 북부의 러시아군에 큰 타격을 입히고 상당한 영토를 수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간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측의 근소한 우세 속에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일종의 교착상태인 현 상황을 쉽게 타개하지 못하는 판이다. 과연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이어질지, 지켜볼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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